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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와달라 했는데...” 파킨슨병 노파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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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와달라 했는데...” 파킨슨병 노파의 눈물

입력
2015.12.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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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외도와 자식 패륜짓에 고통

3억 상당 재산 뺏길까 늘 노심초사

평소 친아들 같았던 반찬가게 주인

5년 前 병 진단 후에도 정성껏 도와

할머니 부탁에 ‘임의후견’ 맺었지만

법원 “정신적 제약 없다” 2년째 계류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84세 할머니 이모씨는 서울 노원구 동네 반찬 가게에 거의 매일 들렀다. 꼬박 10년이었다. 가게 문을 열면 언제든 살갑게 맞아주고 아픈 데는 없는지 살펴보는 찬 가게 주인 황모(52)씨는 친아들 같았다. 그러던 2010년, 이씨는 갑자기 팔 다리에 힘이 풀렸다. 파킨슨 병이라고, 병원은 진단했다. 그때부터 황씨는 할머니 댁에 반찬을 배달했고, 이씨가 넘어져 다쳤을 때 맨 먼저 119에 연락해 후송되도록 조치했다.

이씨는 2013년 병세가 더 심해지자 황씨에게 가족사를 털어놨다. 이씨는 1960년 결혼식을 올렸고, 2남 1녀를 뒀다. 그러나 교직에 있던 남편은 생활비도 안 줬고, 알고 보니 혼외자를 낳고 딴집 살림을 살았다. 이혼했다가 ‘자식이 뭔 죄가 있나’싶어 다시 재결합했지만 장성한 피붙이는 남편보다 더 모질었다. 큰 아들은 이씨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받은 보상금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씨가 “취직해서 네 힘으로 살라”고 하자 돌아온 건 구타였다. 이씨가 통증을 견디지 못하자 “병원에 가자”던 가족들은 그를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시켰다. 이후 큰 아들은 이씨의 주택청약통장을 해약해 돈을 챙겼다. 퇴원해 찾아온 이씨에게 “또 돈 얘기를 하거나 우리집 근처에 있으면 급사시키겠다”고 협박했다. 그 뒤로 이씨는 울분을 삼키며 자녀들과 연락을 단절했지만, 재산(집 1억7,000만원 상당과 예금 1억여원)을 자녀들이 노릴까 늘 노심초사해야 했다.

할머니의 속사정에 눈시울을 붉힌 황씨는 이씨를 모시겠다고 결심, 법적 대리인이 될 방법을 수소문했다. 황씨는 뇌출혈로 쓰러진 친부도 간병하는 효자였다. 그러다 2013년 12월 지인의 추천으로 이씨와 ‘임의후견’계약을 맺었다. 황씨가 이씨를 대신해 임대차계약이나 계좌 입출금 등 재산관리를 비롯해 의료행위 동의 등 신상보호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계약이었다. 이씨는 “친자식보다 소중한 황씨에게 내가 매달렸다”며 “나를 도와준다고 해준 게 고맙고, 이런 부담을 줘서 미안하다”고 심정을 표했다.

남은 건 법원의 허가였다. 당사자끼리 계약서를 쓰고, 공증을 받고 등기를 마쳤다고 해도 임의후견계약의 효력이 생기려면 법원이 이씨의 상태를 보고 후견인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뒤, 황씨가 후견인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를 살필 감독인 선임을 허가해야만 한다.

하지만 서울가정법원은 약 1년여만인 지난해 11월 후견감독인을 선임해달라는 황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씨가 파킨슨병을 앓으며 잘 걷질 못하지만 정신적 제약이 있는 상태라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과거를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해 후견인을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민법(후견계약과 후견감독인 선임ㆍ959조)에 ‘지속적인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능력이 부족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인정될 때 감독인을 선임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황씨 측은 “할머니는 한번 외출하면 며칠간 식사도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하고, 병이 점차 악화되면서 간병비를 이중으로 주고 간병인에게 떼이는 등 인지장애도 있다”며 항고했다. 할머니는 지난해 2월부터 요양병원에서 입원 중이다.

이에 대해 김효석 법무사는 “임의후견감독인 선임요건을 너무 경직되게 가려선 안 된다”며 “후견의 복지적 측면을 고려해 실제 간절히 필요한 이에게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1년째 심리 중인 항고 전담 재판부는 두 달 전 당사자들의 심문을 들었다. 파키슨병 증세가 심해지는 고령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것인지, ‘계속되는 정신적 제약’에만 한정된 법 규정을 또 한번 엄격히 판단의 잣대로 삼을지 주목된다. 성년후견 전담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법정 후견과 달리 임의후견에 대해선 후견이 필요한 정신적 제약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법에 아무 규정이 없어 재판부가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울러 법원이 누구를 후견인으로 할지, 후견 범위를 어떻게 할지를 정할 재량의 여지도 거의 없어 결정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임의후견이란

본인이 나중에 치매 등으로 판단력이 흐려져 일상생활과 사무처리를 하기 힘들 때를 대비, 정신이 온전할 때 특정인과 후견계약을 맺는 것이다. 자신의 의사로 계약을 해두는 일종의 ‘후견 보험’으로, 공증 뒤 법원에 등기하면 된다. 계약의 효력은 법원으로부터 후견감독인 선임을 받은 때부터 생긴다. 그 전에는 계약 철회가 자유롭지만 후견감독인이 선임되면 법원 허가를 받아야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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