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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립스틱 짙게 바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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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립스틱 짙게 바르고

입력
2015.12.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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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립스틱’이란 영화가 있다. 감독은 아벨 페라라. B급 영화를 자주 만들었는데, B급이라고 해서 너절한 킬링타임용 영화나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폭력과 구원 등의 문제를 주로 다룬 그의 영화는 지나치게 심각하고 어이없을 정도로 지루한데다가 역겨울 정도로 잔혹하다. 박찬욱 감독 등이 그를 추앙하는 것으로 안다. ‘복수의 립스틱’은 그의 데뷔작이다. 촌스러울 정도로 명징한 제목만큼 내용도 간단하다. 뉴욕의 한 젊은 여인이 성폭행에 이어 연달아 강도를 만난다. 그렇게 삶이 순식간에 파괴된다. 이후, 그녀는 립스틱을 짙게 바른다. 그러고는 수녀복을 입은 채 콜트 45구경 권총으로 뉴욕의 ‘남자 쓰레기’들을 처단한다는 것. 무슨 형식미나 미장센을 논하자는 거 아니다. 아벨 페라라의 골 때리는 영화세계를 섬세히 얘기하기엔 지면이 좁다. 며칠 전 TV 시사프로그램의 ‘소라넷’ 편을 보면서 그 영화가 생각났을 뿐이다. 법률이나 수사권역 따위를 논하며 헛기침하거나 성폭행에 대한 사회학적 진단 어쩌고 잘난 척 떠들어대기 전에 처단해야 할 ‘쓰레기’들은 당장 처단하는 게 맞지 않느냐 하는 것. 국가 공인 살인면허는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 수난 당한 여성들에게 우선권을 줘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 개소리 같은가. 개들에게 내뱉는 소리가 사람 소리에 불과하다면 개들이 알아듣기나 할까 싶어 짖어봤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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