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이른바 음악과 농산물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가수 루시드 폴이 이달 11일 새벽 2시 자신의 7집 앨범과 직접 재배하고 딴 귤, 책자로 구성된 패키지를 CJ오쇼핑에서 판매한 방송 ‘귤이 빛나는 밤에’. 방송이 끝난 이후에도 다시보기 조회 수가 16만 건을 넘어섰을 정도로 이 방송은 업계는 물론 인터넷상에서 뜨거운 화제가 됐다.
이 방송을 만든 CJ오쇼핑 공세현(33), 김나미(32), 배진한(37) PD 3명을 23일 서울 서초구 CJ오쇼핑 사옥에서 만났다. 이 방송을 마지막으로 출산 휴가에 들어간 공 PD는 “수익성을 생각했다면 굳이 이 방송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갈수록 레드오션이 되고 있는 홈쇼핑 업계의 의미 있는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방송 건당 주문금액이 수억원을 넘어서고, 방송 시간이 곧 매출과 직결되는 홈쇼핑 특성상 이번 방송은 파격이었다. 40분 간 2만9,900원에 딱 1,000장 한정으로 판매한 신보는 방송 시작 9분20초 만에 매진됐고, 나머지 방송은 루시드 폴의 쇼케이스로 꾸며졌다.
이번 방송은 여러모로 새로운 시도였다. ‘귤밤’의 방송이 결정된 지난달, 식품ㆍ문화 담당 PD 대신 이 상품에 관심을 가진 PD들의 자원을 받아 팀이 꾸려졌다. 김 PD는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홈쇼핑의 포맷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면서 상품인 음악까지 잘 전달하기 위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전례가 없었던 이 프로그램은 방송에서 음악 이야기를 나눌 단 5분의 시간도 얻기 힘들었던 가수와 불황 속에서 새 길을 찾고자 했던 홈쇼핑 측의 고민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CJ오쇼핑은 단순히 ‘앨범을 2만9,900원에 팝니다’라는 기존 판매 방식 대신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덧입혔다. 김 PD는 “루시드 폴이 잘 나가지 않는 앨범을 홈쇼핑에 팔러 나왔다는 느낌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얘기하고 그를 모르는 사람들도 방송을 본 뒤 사고 싶어하도록 만드는 데 치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귤과 음반이라는 상품에만 집중하지 않았던 덕에, 40분 분량의 유익한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가장 홈쇼핑스러우면서도 홈쇼핑 같지 않은 방송이 탄생했고, ‘대박’이 났다는 평가다.
이번 방송을 기획 총괄한 배 PD는 “홈쇼핑에서는 누구나 무엇이든 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기회였다”면서 “홈쇼핑이 단순히 유통 마진을 남기는 곳이 아니라 가치를 소비하는 곳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변화되는 매체 환경 속에서 TV에 기반하는 홈쇼핑은 점점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듯 홈쇼핑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고 있는 것이다. 배 PD는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TV가 스토리와 이미지를 만들어 상품을 진열하는 쇼룸이 된다면, 소비 형태는 홈쇼핑이 아닌 모바일 등 다른 채널이어도 상관없다고 본다”며 “어디에서 시작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TV와 모바일은 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라 서로 주고 받으면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CJ오쇼핑은 업계 최초로 패션을 방송하고, 쇼퍼테인먼트(쇼핑+엔터테인먼트)라는 용어를 탄생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를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영향으로 홈쇼핑의 방송 포맷이 창의적으로 변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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