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공동대응
"노동자 권익 향상하는 내용 있지만
파견확대·일반해고 도입 절대 불가"
“가족과 오붓하게 연말을 보내고 싶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어 거리로 나섰습니다.”
서울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27일 오전 국회의사당 인근 여의도 국민은행 앞.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각각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었다. 변변한 난방장치도 없는 6㎡ 남짓한 천막 안에서 순번을 정한 10여 명의 조합원들은 체온으로 냉기를 녹이며 자리를 지켰다. 양 노총의 조합원들은 정부ㆍ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의 연내 통과와 양대 지침 도입에 반대하기 위해 성탄절은 물론 연말을 반납하고 길 거리로 나섰다. 두 노총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최근에 없던 일이다.
한국노총의 단위노조 대표자 연석회의는 지난 21일부터 천막 농성에 돌입했는데, 금속ㆍ화학노련과 공공연맹 등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산별조직의 조합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막에서 만난 심재호(44) 화학노련 정책국장은 “야당이 안철수 의원 탈당 사태로 내분을 겪고 있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며 “정부가 연일 노동법 처리 압박에 나서고 있는 데 연말 연시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육일(47) 화학노련 사무처장도 "노동개혁 법안 중에는 분명 노동자 권익을 향상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해도 파견 확대나 일반해고 도입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22일부터 시작한 천막농성을 임시국회가 끝나는 다음달 8일까지 지속하기로 했다. 민노총의 한 국장급 인사는 "연초부터는 본격적으로 총선에 대비해 반(反)노동자 정당을 심판하는 '제2의 투쟁'도 벌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한상균 위원장이 구속된 상황이지만 4차 민중총궐기대회를 계획, 다시 정부와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양대 노총 금속ㆍ화학노조가 참여하는 제조공동투쟁본부는 29일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본격 연대 활동에 나설 방침이다.
양대 노총이 손을 맞잡은 것은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한국노총과 달리 민주노총은 환란 당시인 1998년 2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자법’에 합의한 뒤 조합원들의 반발로 지도부가 전원 사퇴한 후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노사정 대타협 도출을 위해 지난해 8월부터 14개월간 계속 된 사회적 대화에도 한국노총만 노동계 대표로 참가했다. 송보석 민주노총 제조공투본 간사는 “5대 입법의 처리 문제로 노동계에서 전에 없는 동투(冬鬪)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양대노총이 서로 입장 차를 넘어 단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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