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의 ‘수용소 군도(The Gulag Archipelago)’ 러시아어판과 불어판이 1973년 12월 28일 프랑스 세이유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70년 노벨문학상을 탄 저명한 반체제 작가가 자신의 굴락(노동강제수용소) 8년 체험과 227명의 수감자 증언 및 목격담, 관련자료를 바탕으로 감옥과 공포정치에 기초한 소비에트 체제권력(1918~1956)의 실체를 폭로한 전 3권의 방대한 기록이었다.
소문으로 떠돌던 책이 출간되자 각국 저명 출판사들은 경쟁적으로 번역에 나섰고, 이듬해 봄 영어판을 시작으로 반년도 안돼 서구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자국 언어로 읽을 수 있게 됐다. 지식사회 특히 스탈린 이후에도 소비에트의 건강성을 믿고자 했던 좌파 진영은 솔제니친의 고발에 큰 논란과 충격에 휩싸였다. 공포정치가 스탈린체제의 결함이 아니라 체제의 결함, 즉 10월 혁명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주장해서였다. 솔제니친은 책이 출간된 지 6주 만에 국외로 추방, 서독으로 망명한 뒤 스위스에 체류했다.
포병장교였던 솔제니친은 2차대전 중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발각돼 1945년 투옥됐다. 출옥 후 흐루시초프 체제이던 62년 소련 문학잡지 ‘노비 미르(Novy Mir)’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연재했고, ‘암병동’ 등 스탈린 체제를 공박하는 잇단 작품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 69년 그는 반소비에트 작가로 몰려 작가동맹에서 추방됐고, 이듬해 노벨상을 탔다.
‘수용소 군도’는 58년 집필을 시작해 68년 탈고했다. KGB의 검열과 원고 몰수를 피하기 위해 솔제니친은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원고를 썼고, 특히 에스토니아 교육장관을 지낸 아놀드 수시(Arnold Susi)에게 초안과 타이핑 원고를 수시로 보내 보관하게 했다. 늘 여러 부의 복사본을 따로 간직했고, 마이크로 필름에 담기도 했고, 한 곳에 원고 전부를 보관하지도 않았다. 그는 친구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별장도 자주 이용했는데, 그의 명성과 권위 덕에 소비에트 당국의 압수 수색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원고는 솔제니친의 법률자문을 하던 스위스의 한 변호사에 의해 필름 형태로 밀반출됐다. ‘수용소군도’의 인세 전액은 굴락 수용소 피해자를 돕는 ‘솔제니친 자선기금’에 귀속된다.
솔제니친은 연방 해체 후인 1994년 러시아로 귀국했고, ‘수용소 군도’의 정식 러시아어 판도 출간됐다. 2009년 이후 고등학교 과정 교과서에 일부가 수록되기도 했다. 그는 공산주의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물질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고, 옐친 정부와도 불화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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