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1년여 만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서울시향 사태’의 화살이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에게 향하고 있다. 당초 가해자로 알려진 박현정(53ㆍ여) 전 서울시향 대표가 사태의 배후로 지목한 정 감독 주변 인물로 경찰 수사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달 중순 박 전 대표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도록 서울시향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로 정 감독의 부인 구모(6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구씨는 “박 전 대표가 성추행과 성희롱, 폭언을 일삼았다”는 내용의 투서를 작성ㆍ배포하도록 정 감독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시향 공연기획팀 과장 백모(39ㆍ여)씨에게 지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박 전 대표의 성추행 및 막말을 고발하는 직원들의 투서로 시작된 서울시향 사태는 올해 8월 박 전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곽모(39)씨 등 서울시향 직원들이 낸 고소 사건에 대해 경찰이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혐의 결론을 내리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지난달에는 경찰이 오히려 박 전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곽씨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곽씨의 투서 및 고소 과정에 백씨가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출국금지 조치도 취했다. 나아가 백씨가 정 감독 비서지만 대부분의 지시를 부인인 구씨를 통해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건의 여파가 정 감독 주변 인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실제 정 감독은 개인 휴대폰이나 이메일이 외부에 노출돼 있지 않아 정 감독과 연락하려면 구씨를 거쳐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다만 지난달 경찰이 신청한 곽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관련자 진술이 엇갈리거나 명확하지 않아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며 기각한 바 있어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진실을 단정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구씨가 계속 해외에 체류 중이고, 백씨 역시 최근 출산 이후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져 실체 규명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구씨가 연루됐다는 얘기가 돌아 실체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입건하게 됐다”며 “서면 조사에는 한계가 있어 구씨가 자진 출석해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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