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내년에 ‘보육대란’이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누리과정 재정 문제 때문이다. 교육부는 시ㆍ도교육청에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라고 압박하는 반면, 교육감들은 국가 책임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전국 17개 시ㆍ도교육청 가운데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특별히 어린이집의 경우 서울, 경기 등 7개 시ㆍ도는 아예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나머지 10곳도 2~9개월 분에 불과하다.
교육과 보육을 통합해 유아교육의 질을 높이고, 생애 출발점 평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누리과정이 갈등의 핵으로 부상한 것이다. 펄쩍 뛰는 쪽은 교육감들이다. 정부가 무상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교육청에 떠넘겨 지방교육재정을 파탄으로 내몰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누리과정이 도입된 2012년 한해 9,000억원 남짓이던 시ㆍ도교육청의 채무가 시행 4년 만인 2015년 1조 7,000억원 규모로 늘어났다.

어린이집 누리과정의 추가 재정 소요가 교육감들의 예산 편성권과 자율권을 침해해온 것도 논란거리다. 교육감들은 ‘보육대란’을 막기 위해 지난 4년간 각종 교육사업을 축소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추가 재정 소요가 날로 커져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지방교육교부금 확대 등 정부의 예산 증액이 없는 한 ‘보육대란’을 넘어 초ㆍ중등교육이 황폐해지는 ‘교육대란’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법령상 교육감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만 3~5세 유아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어디를 다니든, 또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무상교육ㆍ보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니 국민이 걱정하지 않도록 2016년 누리과정 예산을 차질 없이 편성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방교육교부금법, 유아교육법 등 법령 위반 운운하면서 정부가 재정 책임을 전가한다는 교육감들의 비판이 이유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대치하자 학부모들이 좌불안석이다. ‘유치원 입학 전쟁’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갈아타기’가 문제를 키웠다. 공립유치원의 경우 28명 원아 선발에 314명이 몰리는 등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는 탄식이 나올 정도다. 사립유치원 추첨도 ‘7일간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오죽하면 서울대 교수팀이 개발한 ‘공정한 유치원 추첨 프로그램’이 기사화될 정도겠는가.
문제는 과거 복지부가 책임지던 어린이집 누리과정 재정에 있다. 정부는 이를 2015년부터 전액 교육부 소관의 지방교육교부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교부금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내국세 20.27%의 교부금이 증가할 것으로 추산해 교부금을 받은 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경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수 결손 등에 대한 교육부의 안이한 대응이 작금의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미래 예측을 기초로 한 교육계획은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 잘못을 담백하게 인정하고 대책을 세우면 그만인 것을 이리저리 둘러대다 악화시키고 말았다. 더구나 ‘진보교육감’을 재정으로 옥죄어 운신의 폭을 줄이자는 정치 셈법까지 동원되었다.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아니라 교육청 의무지출경비로 변경한 것이다. 이 정부의 특기라 할 만한 행정 입법 ‘꼼수’다.
지난 2일 정부와 여당은 예비비 3,000억원을 책정하여 누리과정 예산을 ‘우회 지원’하기로 하였다. 정부와 여당이 책임 당사자임을 인정한 것이다. 2012년 이명박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무상보육 지원 대상 축소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새누리당이 즉각 반발하면서 “아이 키우기 국가 책임 총선 공약 이행”을 재확인하는 한편,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0~5세 보육 및 유아 교육 국가완전책임제 실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결자해지의 자세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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