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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일했는데 연차휴가 0"... 대한항공 승무원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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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일했는데 연차휴가 0"... 대한항공 승무원의 비애

입력
2015.12.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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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 홍역 겪었지만

승무원들 열악한 근무환경 여전

병가 일수에 따라 벌점까지

승진 누락 피하려 아파도 근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으로 근무하는 A씨는 입사 3년이 넘은 지금까지 단 하루도 연차휴가를 써본 적이 없다. 매년 휴가를 신청했지만 그때마다 사측은 별다른 설명 없이 반려했다. 지난해 참다 못한 A씨가 이유를 묻자 “휴가 가능 인원이 제한돼 있어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 왔다 A씨는 25일 “비행 성수기를 피해 11월에 휴가원을 냈는데도 납득할 만한 반려 사유를 듣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1년 전 ‘땅콩회항’ 사태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대한항공 승무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승무원들은 “여론은 당시 조현아 전 부사장 개인의 ‘갑질’에 분노했지만, 직원들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사내 시스템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3년 넘게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일했던 B씨는 맹목적 희생을 강요하는 사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올해 중순 회사를 나왔다. 그 역시 근무 기간 중 단 한 차례도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했다. B씨는 “선배들도 몇 년째 휴가를 못 가, 잔여 휴가일이 50일 이상 쌓인 경우도 있다”며 “쉬지 않고 일한 탓인지 신장이 안 좋아져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B씨가 퇴사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휴가는커녕 건강상 이유로 병가를 낸 직원에게도 벌점을 부과하는 사내 평가방식 때문이었다. ‘대한항공 평가제도’를 보면 비행손실 방지 항목에 ▦징계 실적 ▦병가 일수 ▦병가 건수 등을 포함시켜 점수를 매긴 뒤 승진심사에 반영하고 있다. 비행손실 방지 항목은 객실내부 개인성과평가의 28%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올 초 15일 병가를 내 승진에서 누락한 C씨는 “병가 벌점을 부과하는 자체도 황당하지만 병가 사용 일수와 건수에 따라 벌점을 매겨 한 번만 병가를 내도 최소 두 번의 벌점을 받는 구조”라며 “동료들도 승진 누락을 우려해 어지간하면 아파도 참고 스케줄을 소화한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측은 오히려 직원들의 불안감을 교묘히 악용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병가를 대신해 ‘병가대체휴가’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외상이나 팔ㆍ다리 골절, 피부염 등이 있는 직원에 한해 병가가 아닌 연차휴가를 사용하게 하는 식이다. C씨는 “병가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하는 직원들의 심리와 남아도는 연차를 모두 수당으로 주기 싫어하는 사측의 욕심이 빚어낸 황당한 시스템”라고 비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대한항공의 휴가ㆍ인사제도는 근로기준법상 유급휴가 조항 위배 소지가 크다”며 “조건 없이 특정 병가일수를 보장하는 등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관계자는 “병가벌점의 경우 조직 기여도를 평가하기 위한 필수항목으로, 다양한 평가요소 중 하나”라며 “또 반기당 1회, 연간 6일 미만으로 병가를 사용할 경우 별도의 벌점을 주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다른 업종과 달리 팀으로 움직이는 항공업계 특성상 개인의 스케줄을 맞춰주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최근 대형기 도입과 장거리노선 증가로 승무원 수요가 증가해 직원들의 휴가사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올해 800명, 내년 1,000명 등 승무원들을 신규채용 해 직원들의 휴가를 보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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