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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작은 대추에 담긴 우주, 후회 남지 않게 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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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작은 대추에 담긴 우주, 후회 남지 않게 그렸어요”

입력
2015.12.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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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ㆍ청소년 부문 수상작 ‘대추 한 알’의 유리 작가는 장석주 시인의 동명 시를 그림책으로 만들면서 대추나무 곁에서 1년 반을 보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ㆍ청소년 부문 수상작 ‘대추 한 알’의 유리 작가는 장석주 시인의 동명 시를 그림책으로 만들면서 대추나무 곁에서 1년 반을 보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어디선가 본 듯한 저 시는 장석주 시인이 2005년 발표한 것으로, 2009년 광화문 교보생명 글판에 게재되며 많은 이들에게 친숙해졌다. 이 시를 가지고 만든 그림책 ‘대추 한 알’은 그 자체로 대추 한 알이다. 기획에 1년, 자료조사에 1년, 원화 작업 1년. 30여쪽 남짓의 납작한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력의 양은 일반인의 눈으로는 좀처럼 분간하기 힘든 것이다.

“제가 글 복이 많은 것 같아요. 광화문에서 저 시를 봤을 때 개인적으로 격려를 많이 받았는데 이게 제 두 번째 책이 될 줄은 몰랐어요.”

유리 작가는 대학에서 그림이 아닌 도자공예를 전공했다. 입시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그림이 좋고 책이 좋아 한국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 들어간 것이 그림책 작가로 첫 발을 뗀 계기였다. 거기서 이야기꽃 출판사 대표인 김장성씨를 만났고 첫 책 ‘돼지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 책까지 함께 하게 됐다.

‘대추 한 알’은 짧은 시지만 그림으로 표현하기엔 간단치 않다. 작은 대추 속에서 우주를 본 시인의 통찰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

대추 한 알에 들어 있는 거대한 에너지는 먼저 물리적 크기로 형상화됐다. 그림 속 대추의 크기는 그야말로 대문짝만하다. 고개를 숙인 채 얼굴 없이 일하는 농부들을 배경으로 대추는 햇볕과 비바람 아래 괴물처럼 꿈틀댄다.

고난 속에서 치열하게 갱신을 거듭하는 대추의 모습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한층 빛을 발한다. 대추를 그리기 위해 작가가 1년 반 동안 찍은 사진만 3,000여장. 하루가 멀다 하고 대추나무 근처를 기웃대던 작가를 도둑으로 오인한 주인 할머니가 버선 발로 쫓아 나온 일화도 있다. 오해는 풀렸으나 마음을 놓지 못한 할머니는 그날 대추를 전부 수확했고 일을 도운 작가에게도 한 자루 들려줬다.

“대추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대추나무가 얼마나 벌이 많이 꼬이는 나무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젠 아주 멀리서나 깜깜한 밤에도 대추 나무를 식별할 수 있어요.”

배경으로 그린 농촌은 작가가 나고 자란 경기도 여주 화평리다. 등장 인물들, 심지어 개까지도 모두 실제 아는 사람과 동물을 그린 것이다. “사실주의 기법을 택한 건 그냥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림을 그릴 때 완성도에 집착하는 편이에요. 독자 분들은 모르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다 알거든요. 다 그리고 나서 ‘아, 조금만 더 할 걸’하는 후회가 남지 않게, 그러다 보니 너무 진을 뺀 감이 없지 않아요.(웃음)”

내년 출간 예정인 세 번째 책은 통일에 관한 그림책이다. ‘돼지 이야기’가 구제역을 주제로 한 것을 감안해 작가의 관심사를 대략 넘겨 짚어 봤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그쪽만 추구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그리고 싶은 건 잊혀진 것들이에요. 너무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또 너무 빨리 잊혀지잖아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들을 그리면서 너무 쉽게 잊지는 말자고 넌지시 얘기하고 싶어요.”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작 ‘대추 한 알’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작 ‘대추 한 알’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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