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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숫자의 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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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숫자의 강박

입력
2015.12.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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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생각 없이 시계를 봤는데 4:44일 때가 있다. 괜히 기분 찝찝해지는 게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더라. 원고를 쓰다가 모니터 오른쪽 하단 작은 시간 표시가 그런 식으로 거슬릴 때 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볼 때도 마찬가지. 왼쪽으로 아랫배를 내밀고 걸어가는 듯한 4자의 느닷없는 정렬은 왠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고집불통 아저씨들 같은 데가 있다. 공연히 숨이 턱 막히고 생활이 어떤 꽉 짜인 틀 안에 속박당하고 있다는 기분마저 든다. 4:44뿐만이 아니다. 언젠가 한번은 무심코 시계를 들여다 볼 때마다 정각을 가리키고 있어 소름 끼친 적 있다. 12:00. 3:00. 7:00. 그리고 늦은 밤 11:00. 특별한 규칙 없이 살고 있는 내게 깐깐하고 독살스러운 훈육관이 죽비라도 내리치는 기분이었다. 불성실을 자책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기보다 화가 났다.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와 무게는 매 순간 천차만별인데, 어찌하여 시계는 저 스스로가 정확하고 옳다는 듯 고지식하게 정색하며 사람을 압박하는가,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시간을 부러 의식하게 만드는 숫자의 체계가 얄미웠다. 삶의 효율과 정비를 위해 구획된 시간 체계 자체가 감옥인 것 같았다. 사실,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아도 될 강박일 텐데…라고 쓰는데 마감독촉 전화가 왔다. 시간아, 알았다. 내가 졌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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