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추정되는 야스쿠니 폭발범 의문점 많은데 자세히 보도 안돼
순직 소방관 기사 더 눈에 띄었으면
새정치 내홍은 지긋지긋한 소모전… 젊은 정치인 발굴해 키우면 어떨까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 심층 보도… 배심 재판의 의미와 절차 잘 다뤄
한국일보 보도의 독자 권익 침해 여부를 짚어 보고 편집 방향을 조언하는 독자권익위원회 12월 회의가 16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 1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인 권광중 독자권익위원장을 비롯해 독자위원인 최창렬 용인대 교수, 지평님 황소자리출판사 대표, 주부 정희수씨와 간사 이계성 한국일보 수석 논설위원, 진성훈 편집위원이 참석했다. 독자위원들은 최근 한 달 동안 중요한 이슈였던 김영삼 대통령 서거, 광화문 집회, 안철수 의원 탈당, 남국 당국자 회담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생인 변은샘(가톨릭대) 독자위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보내왔다.
최창렬=4일자 문재인 대표의 안철수 혁신전당대회 거부 기사가 1면 우측 하단에 작게 다뤄졌다. 야당의 반복되는 핑퐁 게임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이나, 제1야당 내분 봉합의 갈림길이었다는 측면에서 조금 더 상세한 보도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정가방담’ 코너 중 새누리당 내부의 용퇴론과 험지론은 정리가 돋보였다. 정치 관련 뉴스가 의외로 어려우므로 ‘정치 톺아보기’‘정가방담’ 등의 형태로 이슈를 설명하거나 분석하는 것은 좋은 시도라고 본다. 15일자 1면 헤드라인 ‘“탈당…탈당…” 안풍 심상찮다’는 탈당 선언 이후 하루 이틀밖에 안된 상황에서 임팩트나 파급력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것 같다라는 분위기였는데 제목이 좀 성급한 게 아닌가 싶었다.
한국일보는 중도에서 약간은 비판적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폭력시위와 강경진압 논란에서 기계적 중립을 추구한다. 지나치게 양비론으로 간다. 조금 더 한 쪽으로 힘을 실어도 되지 않나 생각한다. 중도라고 해도 너무 양쪽 눈치를 보는 느낌이 든다.
정희수=해외 소식이 많았던 한 달이었다. 좋은 소식보다 테러나 총격 사건이 많았다. 미리 걱정을 해야 되는 안전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 폭발 사건의 혐의자는 한국인이고 의문점이 많은데 좀더 자세히 다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달에도 화재나 사건 현장에서 희생되는 소방관을 좀더 눈에 띄게 다루어주었으면 했는데 얼마 전 서해대교 화재에서도 한 명이 순직했다. 이런 기사가 좀더 신문 앞쪽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새해 예산 기사 중에서도 ‘누리과정’에 관심이 많이 갔다. 어린이집 다니는 집과 유치원 다니는 집은 다르다.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와 관련된 시설이고 유치원은 교육부 쪽이다. 지원 정책이 잘못되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긴다. 육아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지원에 예민하다. 중국에서 두 자녀를 허용했지만 돈이 들어서 낳지 않는다는 기사도 봤는데, 우리 역시 돈 때문에 육아에 전전긍긍하는 게 안타깝다.
지금 성인들은 종이신문을 알지만 다음 세대들은 신문을 볼 기회가 없어 잘 모를 것 같다. 책도 마찬가지다. 태블릿으로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게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그래서 칠곡군 마을 할머니들이 낸 시집 기사(11월 24일자) ‘책, 공동체를 꿈꾸다’(11월 25일자)나 심지어 ‘동네 서점이 살아야 지역 경제가 살아납니다. 동네 서점은 작은 도서관이자 문화의 공간입니다’고 하는 전면광고까지 가슴 뭉클하게 읽었다.
지평님=퇴임 후의 김영삼 대통령 기사를 접할 때마다 모종의 안타까움 혹은 애잔함 같은 게 있었다. 금융실명제나 하나회 혁파 등 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대단한 공적이 있었음에도 ‘IMF 사태를 부를 장본인’이라는 낙인 아래 살았으니까. 아마도 죽음 이후 그의 생이 이토록 비중 있게 재조명될 줄은 세상을 떠난 당사자조차 몰랐을 것 같다. 여타 신문에 뒤지지 않게 한국일보 역시 YS의 생애를 중심축으로 한 한국 현대사를 다양하게 수용했고 그의 삶이 재조명되는 현상에 관해서도 입체적인 분석을 곁들였다. 뉴스를 심도 있게 읽는 맛에서 신문은 방송이나 SNS가 지니지 못하는 위력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었다. 신문 존재의 가치를 느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홍은 독자의 시각에서 볼 때 전혀 생산적이지 않는 ‘지긋지긋한’ 소모전이다. 애초에 지향하는 바가 다른 사람들이 손을 잡은 모양새부터가 야합이었는데, 내홍이 봉합되더라도 뭐 그리 대단한 정당정치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 무망한 봉합의 반복이다. 그런데 끝내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기 직전까지 한국일보 기사와 사설은(물론 다른 매체도 마찬가지였지만) 야당이 쪼개지면 안 된다는 원론적인 시각만을 되풀이했다.
진보세력의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걸 절감하는 많은 이들이 보기에 이런 언론의 시각이야말로 상상력과 건설적 방향을 모색하는 고민이 결여된 태도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기왕 야당은 쪼개졌고, 기성 정치인들은 선거구 획정 문제 하나를 두고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런 정치판에 신물 나는 상황에서 총선 관련 한국일보 기사의 프레임을 확 바꿔보자고 제안하면 너무 순진하고 무책임한 발상일까? 가령,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 어젠다를 큰 틀에서 몇 가지로 추려낸 뒤 그걸 구현할 새로운 인물(기성 정치권에 발을 담그지 않은)을 발굴해 집중적으로 키워보는 것은 불가능한가? 정치판을 새롭게 바꾸려면 기존의 권력 프레임으로 가둘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젊은 피들이 대거 들어가 판을 바꾸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이 이런 인물을 적극 발굴해 제3의 대안정당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가을, 겨울로 접어들면서 읽을 만한 한국일보의 기획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면의 한계인가? 읽을거리, 생각거리, 연중ㆍ분기 기획이 필요하다. 문화를 바꾸는, 일상을 바꾸는 기획들을 꾸려주면 좋겠다. 사실 독자의 피부에 와 닿는 기사는 정치면이 아니라 일상의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건드려주는 기획물이다. 2016년을 리드할만한 기획물들을 발굴해내는 데 좀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권광중=남북 당국자 회담 관련한 14일자 ‘당국회담 결렬, 남북 관계 악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설은 북측에 요구하지 말고 북측이 해달라는 것,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아서 해주라는 말로 읽어도 되는가?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강산 관광 재개가 쟁점 중 하나다. 관광 가서는 그곳의 지역주민과 대화하고 그들의 생활상을 보는 게 여행이고 관광이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은 이야기를 할, 생활상을 볼 기회가 없다. 그런 관광을 해도 되나.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은 배심 재판으로 진행된다. 한국일보가 이 경과를 몇 번에 걸쳐서 자세하게 실었다. 우리나라는 배심 재판이 도입 초창기다. 배심재판은 제한적 범위와 제한적 효력을 갖는다. 피고인이 원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한다. 배심원들이 결정했다고 해서 재판부가 그대로 선고하지 않는다. 내용을 변경할 수 있다. 배심원 재판의 의미와 절차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 배심재판제도가 확대되는 경우에 대비할 준비가 필요한데 한국일보가 잘 다뤘다.
변은샘=10일 정기국회가 폐회되고 쟁점 법안 처리에 대한 정치적인 해석은 5면에 비중을 두어 실었지만 처리되지 못한 여러 법안들이 사회에 끼칠 영향이나 보류에 따른 후폭풍 등을 따로 다루지 않아 아쉬웠다. 새정치민주연합 내홍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잘 짚어줬다.
보통 고인에 대해서는 평가가 후하듯이 이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다룬 기사들도 다양한 방면에서 고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재조명했다. 알지 못했던 여러 정보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사설에서도 지적했듯 고인이 행했던 오류와 그 결과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러한 실수가 현재에는 없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도 될 수 있어야 한다. 한 쪽으로만 치우친 평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계성=남북 당국 회담 관련해 한국일보는 남북 양측에 공히 선제적인 조치에 나서라는 입장을 일괄되게 견지해왔다. 12일자 사설에서는 북측이 당국회담 진행에 앞서 거듭 대화 분위기 조성을 남측에 요구한 데 대해 북측이 먼저 핵과 미사일, 인권문제 등 남측의 관심 사항에 성의를 보이라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14일자 사설은 당국회담 결렬 후 상황을 다뤘다. 회담 핵심 쟁점이었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초점이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 사설의 강조점이 차이가 날 수 있다.
정치판을 새롭게 바꾸기 위해 참신하고 젊은 인재들이 국회로 많이 진출하려면 밑에서부터 올라 가는 상향식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일반적 상식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상향식 공천이 반드시 젊은 피에 유리하다고도 할 수 없다. 과거 3김시대 강력한 권한을 가진 총재 체재 하에서 하향식 공천이 이뤄질 때 오히려 정치 신인이 더 많이 국회에 진출했다. 정치권에서 공천제 개선에 대한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언론도 노력을 해야 하지만 자칫 정치에 깊이 관여하는 행위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고선영사원 god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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