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서언물을 안 주신데♪. 크리스마스 아침 머리맡에 놓여있을 선물을 기대하며 눈을 떴다. 어머 아직 아무것도 없네. 길이 너무 막혀서 산타 할아버지가 늦으시나봐. 다시 한 번 자는 척해보지만 자취방 웃풍만 나를 감쌀 뿐 먹이를 이고 가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 하지 않는다. 뭐,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 어려운 경기에 누군가 나에게 공짜로 선물을 줄 거라 요행을 바란 것도 잘못이거니와, 혼자 사는데 일어나보니 머리맡에 뭐가 있다면 그것도 소름 끼치는 일 아닌가. 한편으론 올해마저도 나를 외면한 산타 할배가 원망스럽다.
산타 할배 발 기프트를 받고 싶어 내가 중점적으로 노렸던 것은“울면 안돼” 퀘스트였다. 어른이 되니 매일이 울고 싶은 날의 연속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억울함과 서러움에 울컥거리지만 큰소리 내며 울지도 못했고 그나마도 못 참겠다 싶은 날에 화장실에서 새어 나갈까봐 입 틀어막고 숨죽여 운 게 전부였는데 그걸 들켰다니. CCTV는 산타클로스 카메라의 약자였던 건가 정말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네. 이것이 바로 제러미 밴덤이 말한 ‘팬옵티콘’이로구나. 감시당하며 사는 인생이라니.
그러다 불현듯 이렇게 매몰찬 할배 밑에서 죽어라 일만 하는 우리의 순진한 루돌프가 걱정되는 것이었다. 루돌프는 빨간 코를 가진 순록이다. 그의 코가 빨간 이유는 추워서 그렇다, 취해서 그렇다, 여드름 때문이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가장 유력한 말은 “아파서 빨갛다”는 것이다. 순록은 몸의 체온과 수분을 유지시켜 주는 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형태는 호흡기를 통한 세균 감염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즉, 루돌프는 기생충 감염으로 인한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순록이었다. 이런 아픈 루돌프에게 손을 내밀어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전 세계를 다니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눠주는 푸근한 할아버지 산타.
루돌프를 팔아 수 십 년 동안 부드럽고 따뜻한 이미지를 확립한 산타는 12월 성탄절 선물 운송서비스 전쟁이 끝나면 우리 루돌프를 어떻게 할까? 같이 달리느라 고생했다며 두둑한 보너스라도 주셨을까? 아니면 재충전하고 오라고 동계 휴가를 하사하셨을까? 유추해 보건대 우리의 산타 할배는 그런 스타일은 아닐 것만 같다. 그는 이를 테면 항상 루돌프를 부리는 갑의 처지다. 그의 주변에는 충성하려는 ‘을, 병, 정’들이 넘쳐난다. 나눠 주는 선물을 받기 위해 굽실거리는 사람들을 많이도 보아왔을 것이다.
‘소년이여, 요리하라’(우리학교, 2015)는 책에 “고기는 항상 옳다”는 말이 나온다. “사람이 하루를 살기 위해서는 각종 영양소가 필요한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영어로 protein인데 그리스어로‘중요한 것’을 뜻하는 proteios에서 유래했다. 그러니 단백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열심히 뛰어 다닌 덕에 기력이 쇠해진 산타 할배는 중요한 단백질(protein)을 채우기 위해 한때 본인에게 가장 ‘중요했던(proteios) 루돌프’를 낼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팀, 동맹, 전우. 에이~ 그것 또한 너희가 해야 할 일 중 한 부분 이었어.” 이렇게 말이다.
루돌프야 잘 들으렴. 갑들은 을이 을인지도 모르는 사이에 갑질을 하기도 하잖니. 고생했으니 따뜻한 물에서 몸 좀 녹이라는 산타 말만 곧이곧대로 믿고 가스렌지 불 위의 냄비로 들어가 “어이쿠 좋구만~” 했다가는 잡아 먹힐지 모르니 정신 차리고 살자. 루돌프 갖고 장난 친다면 그 산타도 나쁘지만, 그냥 무턱대고 믿어버린 루돌프에게도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니. 선물 없는 쓸쓸한 성탄절에 별 생각이 다 든다.
남정미 웃기는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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