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눈 앞에 있다. 고된 일상을 피해, 어쩐지 공허한 연말 축제장식을 떠나, 수도원행(行)을 자처하긴 했지만 대뜸 주어진 검은 수도복과 이어지는 수사(修士)들의 설명에 만감이 교차한다. 다친 영혼의 위로를 기대했지만 피부에 와 닿는 죽음의 감촉은 생각지 못한 과제다. “수도복의 검은색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수도원 바깥에서의 자아를 철저히 포기함으로써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갈아입으십시오. 수도생활 체험, 잘 해 보실 수 있겠습니까?”
19일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벽돌로 단정하게 올라선 성당과 수도회 안뜰은 작은 새들의 지저귐을 빼놓곤 적막하리만치 고요했다. 전날 밤 도착한 20여명의 노장년층은 벌써 이 아득한 고요에 적응한 기색이었다. 2박 3일 일정의 ‘노장년층 수도생활 체험 피정(避靜)’ 참가자들이다. 피정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 수도원 등에서 묵상과 기도로 자신을 살피는 일을 이르는 가톨릭 용어다.
입을 닫고 마음을 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은 “기도하고 일하라”는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에 따라 봉쇄구역 안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수사들의 노동은 청소, 빨래, 주방일부터 출판, 목공, 유리화공예, 금속공예, 농사, 피정의 집과 신학원 운영, 교육, 양로원 운영 등 매우 다양하다.
중장년층에 특화한 수도생활 체험은 7년 전부터 마련했다. 피정의 집 담당 사제인 오윤교 신부는 “연말이라고 도시가 흥청댈 때일수록 중장년들은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끼지 않냐”며 “신자든 비신자든 누구나 찾아와 묵상에 잠겨 반성, 새 계획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피정은 수도생활체험복 착용과 서약예식으로 시작된다. 수도원의 종신서원식을 본떠 가난, 정결, 순명을 약속하고 지키고 싶은 덕행을 정해 다짐하는 시간이다. 실제 수도원 종신서원에 이르기까지는 견학기(6개월), 지청원기(최소1년), 수련기(1년), 유기서원(4년) 등을 거쳐야 한다. 며칠 전 환갑을 지내고, 자신에게 묵상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어 수도원을 찾았다는 대학 교수 A(60)씨는 “인생이라는 산에 올라가는 데 맑은 샘물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면, 더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을 수월하게 갈 수 있지 않겠나 싶어 왔는데 막상 수도복을 입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옷 하나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수사님들의 단순하고 정결한 삶을 따라야겠다는 생각부터 든다”고 했다.
이제 유념해야 할 것은 생활규칙. 저녁 동안 가장 중요한 규칙은 ‘대침묵’이다. 하루 중 다섯 번째 공동기도이자 마지막 기도인 ‘끝 기도’ 이후부터 다음 날 아침 기도 전까지 모두가 침묵을 지킨다. 오 신부는 “입을 다문다는 것은 귀와 마음을 연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침 기도를 여는 말은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이다.
침묵을 중시한다고 홀로 기도하는 것만 강조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평일에는 한결같이 오전 5시에 일어나 대성당에서 하루 5번의 공동기도를 바친다. 오전 5시20분 독서기도와 아침기도, 오전 6시 묵상(반추기도), 오전 11시45분 낮기도, 오후 5시30분 성체조배(聖體朝拜ㆍ성체 앞에서 바치는 예배), 오후 6시 저녁기도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ㆍ거룩한 독서) 등이다. 오 신부는 “성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의 중요한 개념은 독거, 은거가 아닌 공동생활을 중시한다는 것”이라며 “기도하고 노동하고, 홀로 있으되 더불어 사는 일 사이의 중용을 발휘할 줄 아는 분별력이 요구되는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행이나 헐벗음을 지향하지 않는 까닭이다.
평생 간직하고 반추할 성구
19일 오전에는 수도원장인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Abbas ㆍ주교급)가 참가자들과 만났다. 참가자들은 수도원장 선출 방식에서부터 미사 예절까지 다양한 신앙 상담을 쏟아 냈다. 박 아빠스는 특히 “왜 아무리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냐”는 질문에 “주어진 상황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기보다는 ‘내게 어떤 더 좋은 것을, 어떤 다른 것을 주기 위해 준비하고 계실까’하고 생각하다 보면 조급함이 가실 것”이라고 조언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최근 3개월간 몸무게가 8㎏이나 빠졌다는 초등 교사 이지선(40)씨는 “여러 가지 압박, 조급함, 분노, 원망 등을 혼자 계속 억누르다 보니 자학하게 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 자신이 가득 차는 일이 반복돼 힘들었는데, 수도원에 와 여러 말씀을 들으며 자꾸 알 수 없는 울컥함을 느낀다”며 “내가 자잘한 일에 내는 조바심으로 내 자신을 힘들게 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오후에는 ‘내 마음의 성구’를 정해 미니 상본을 만들었다. 사제들은 종신서원, 사제서품 때 성구를 정해 상본을 새겨 평생 가르침을 간직한다. 오 신부는 ‘아무것도 그리스도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등을 택했다고 했다. “성구는 인생의 좌우명처럼 평생 수도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구절이죠. 단순히 종이에 인쇄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머리에 새기기 위함도 아닙니다. 마음에 간직하고 끊임없이 반추하셨으면 좋겠어요.”
보기로 제시된 성경 구절들을 가만히 곱씹던 이들은 문득 낯빛을 환히 밝히기도,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며 고심했다. 수십 년 만에 처음 만지는 풀, 가위가 손에서 겉돌았지만 정성껏 쓰고 매만졌다. 며칠 전 직장 동료가 스스로 생을 등져 내내 표정이 침통했던 남성 참가자 B씨는 “고통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를 택한 뒤 묵상에 잠겼다. 그는 “그 친구를 떠올리며 함께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며 “제 아들 녀석도 취업을 준비하며 힘들어하고 있는데 함께 이 고통의 시간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성 참가자 C(63)씨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를 써 내려갔다. 그는 큰 병을 앓던 딸을 여러 해 전 먼저 떠나 보낸 터였다. “매일 토하는 아이 옷을 하루 열 번씩 빨면서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늘 밝게 웃고. 누가 저희 집에 아픈 사람이 있는지 상상도 못할 정도로요. 그런데 애를 보내고는 늘 우울하고 남편도, 아들에게도 ‘왜 내 마음을 더 헤아려주지 못하나’하는 집착이 생겼어요. 각자 살기 바쁜데도 저는 위로, 보상을 받고 싶었던 거죠. 나이가 들수록 이제 집착을 덜어내야 할 것 같아요. 비우고 버리고 단순하게 기쁘게요.”
각종 수업과 하루 다섯 차례 기도를 마친 참가자들은 저녁 식사 시간이 돼서야 숙소인 피정의 집으로 돌아왔다. 하얗고 각진 건물의 낡은 외양에 어떤 이는 “예전에 혹시 요양소로 쓰이던 곳이냐”며 갸우뚱했지만, 이래봬도 유구한 역사가 깃든 건물이다. 1965년 지어진 한국 최초의 피정의 집인 3층 건물은 연탄 등이 귀하던 당시 천주교회에서는 난방 시설을 갖춘 몇 안 되는 건물이었던 터라 한국 주교들의 최초의 공동집전 미사, 주교회의 등이 줄줄이 열렸다.
식사시간에도 침묵 규칙은 이어졌다. 베네딕도 규칙서 등을 낭독하는 이 외에는 모두 침묵 속에 식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렇게 식사 시간에 함께 듣는 책의 양만 1년에 20여권 분량이다. 식사가 시작되자 밥 한 술, 국 한 모금이 생경했다. 수사가 읽어 내리는 수도규칙만이 귀에 꽂혔다. “험담꾼이 되지 말라. 과식가가 되지 말라. 죽음을 매일 눈앞에 환히 두라. 시기하지 말라. 자만심을 멀리하라. 연로한 이를 공경하라. 연소한 이를 사랑하라.” 오 신부는 “처음에는 이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식사 시간에 독서가 가장 잘 들린다”며 웃었다.
“욕심 채우러 달린 시간 허무해”
이튿날 일정의 백미는 오 신부가 준비한 ‘멋지게 나이 들기’ 강연이었다. 그는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을 읽는 것으로 운을 뗐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자 ▲홀로 있어도 충만하게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법을 배우자 ▲얻기보다 놓아두는 연습을 하자 ▲관계에 느긋해지자는 조언이 이어지자 강연장은 자못 숙연해졌다. 특히 “인생은 모든 것을 얻어 가기보다 놓아둘 수밖에 없는 과정이며, 마지막까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내가 인간이라는 그 자체’”라는 설명에 신인철(61)씨의 어깨로 전율이 스쳤다. 그는 강연 내내 연신 흰 손수건을 눈가에 갖다 댔다. 강관 사업을 크게 하며 “늘 욕심을 부렸다”는 그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달려온 시간이 허무해 몇 해 전부터 도보순례를 시작했고,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환희를 느끼는 중”이라고 했다. “더 자비로이, 더 조용히 베풀며 살겠다”는 그는 내년엔 자선기금 모금을 위한 순례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20일 오후 2박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수도복을 벗은 이들은 하나같이 시원섭섭한 표정이었다. 한 여성 참가자는 이번 체험을 새 인생의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했다. “천주교 신자들은 늘 미사 때 ‘내 탓이오, 내 탓이오’를 반복하잖아요. 실은 지치고 억울한데도 늘 내 탓을 하니 아프고 힘든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복잡하지 말자, 일부러 고통을 되새기지 말자고 생각하려고요. 내 마음을 다잡는 출발점으로 삼아야죠.”
딸을 보낸 슬픔에 젖어 있던 C씨는 “옛 습관을 버리고 묵상으로 가득 차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내가 먼저 단순하고 담백해지면 나를 대하는 사람들도 함께 담백해질 수 있지 않겠냐”고 희망했다.
A 교수는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기대 이상의 것을 배웠어요. 단순하게 감사하고 사랑하는 법을요.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아내에게도 선물하고 싶어요. 함께 순례길로 유명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 보려고요. 만일 가지 못하더라도 준비하는 과정이 행복할 것 같네요.”
20여명의 참가자들이 돌아간 뒤, 수도원은 다시 더 없는 고요에 휘감겼다. 2박 3일간 그 어느 응급실만큼이나 치열했던 영혼의 야전병원을 뒤로 하고 귀경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낮에 들은 강연 한 대목이 뇌리에 맴돌았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고.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진다고요. 이런 믿음이 있을 때 육체적 쇠약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홀로이 또 더불어, 이 남은 기적의 생을 살아갑시다. 가롤로 보로메오 성인의 조언처럼 언제나 당장 떠날 수 있게 살되 영원히 살 듯 매 순간을 살아냅시다.”
당장 떠날 수 있게, 이른바 ‘여한 없이’에 닿으려면 아직 가없이 미안하고 감사하고 사랑해야 할 얼굴들이 차창에 스쳐 눈이 질끈 감겼다.
칠곡=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1909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남자 수도원인 서울 백동 수도원을 모태로 하는 유서 깊은 수도 공동체다. 126명의 수도자가 소속돼 있다. 이탈리아 누르시아의 베네딕도(480~547년) 성인을 스승으로 모시며, 그가 쓴 ‘성 베네딕도 규칙서(Regula Benedicti)’는 서방 교회 수도 생활의 초석이 됐다. 일하고 기도하는 삶을 중시해 분도출판사, 분도가구공예사, 유리화공예실, 금속공회실 등 교회에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는 작업장들이 들어서 있다. 수도원 성당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자세한 정보는 수도원 홈페이지(www.osb.or.kr)나 소울스테이 홈페이지(soulstay.or.kr)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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