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같이 눈썹처럼 생긴 초승달과 그믐달을 구분할 수 있는지. 생기기 시작하면 초승달이고 사라지기 직전이면 그믐달이지만 밤길에서 당장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간단한 방법이 있다.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 쏙 들어가면 초승달, 왼손을 들어 그렇게 되면 그믐달이다. 오른쪽에서 생기기 시작하여 왼쪽으로 점점 커져 상현달(반달)을 거쳐 보름달이 되고, 다시 오른쪽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여 하현달을 지나 달이 없는 그믐으로 이어진다.
▦ 동양의 달, 우리의 달은 풍요의 상징이다. 대보름(음력 1월 15일)과 한가위(음력 8월 15일)는 우리 최대의 명절이다. 하늘에 의지하며 살았던 농경문화 속에선 밤도 생산의 연장이다. 하늘에 떠 있는 것들 가운데 유일하게 변화무쌍한 것은 달뿐이었다. 그 모습을 경외했고, 보름달이 뜨면 남들보다 먼저 뒷산에 올라 풍작과 소원을 빌었다. 개펄과 바위에서 먹거리를 찾았던 어촌에선 실제로 보름(음력 15일)과 그믐(음력 29ㆍ30일)에 조수간만의 차이가 가장 커서 개펄이 넓어지고 바위가 많이 드러났다.
▦ 해를 보며 말을 타고 다녔던 서양에선 생각이 달랐다. 달이 떠있는 밤에는 불안과 공포가 엄습한다. 달이 싫었다. 달은 사람의 정신을 빼앗는다고 여겼다. 달(라틴어 luna)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보호소라는 ‘lunatic asylum’을 정신병원의 의미로 쓰고 있다. 특정한 요일 보름달에 노출돼 잠을 자면 늑대인간이 된다거나, 보름달이 뜨면 드라큘라가 왕성하게 활동한다는 얘기까지 있다. 양력으로 한 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뜨는 경우가 있는데, 두 번째 것을 블루문(blue moon)이라 하며 불길하게 여긴다.
▦ 오늘 성탄절 밤에 보름달이 뜬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럭키문(lucky moon)’이라며 공식 논평을 냈으니 서양에서도 성탄절에 뜨는 보름달은 귀하게 여기는 모양이다. 대략 19년에 한 번씩 생기는 현상이지만 오늘의 럭키문은 윤년이 끼었던 때문에 1977년 이후 38년 만에 처음 우리 앞에 나타난다. 오늘 오후 5시 반쯤 떠서 8시쯤 완전한 보름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국뿐 아니라 북반구 거의 전체에 눈이 없는 성탄절이 될 듯하다. 오랜만에 머리를 젖혀 하늘을 보자. 눈 대신, 아니 눈보다 달이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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