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지구 곳곳을 달궜던 기상현상 ‘엘니뇨’ 대신 내년 후반기부터는 그 반대인 ‘라니냐’가 발생해 한반도를 포함해 북미와 남미에 가뭄과 저온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세계 농산물 작황도 악화해 국제곡물 시장의 가격 불안정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 일본 및 호주 기상당국을 인용,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예년보다 높아지는 ‘엘니뇨’가 이달을 정점으로 수그러지고 내년 하반기 이후에는 ‘라니냐’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라니냐는 적도 부근의 무역풍이 강해지면서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하락할 경우에 지구촌 전역에서 관측되는 기상패턴이다.
일본ㆍ호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엘니뇨는 1997년 이후 거의 20년만에 가장 강력했으며, 해양 수온을 섭씨 2도 가량 높인 것으로 관측됐다. 일본 기상청은 또 최근 발생한 15번의 엘니뇨를 분석한 결과, 라니냐로 이어진 경우가 11번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엘니뇨에 비해 연구가 축적되지는 않았지만, 라니냐가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미국ㆍ캐나다가 있는 북미에 가뭄과 겨울철 한파가 몰아 닥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에도 가뭄이 발생하는 반면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인도네시아에는 반대로 강우량이 증가하고 태평양 일대 태풍 발생 빈도는 높아진다.
지구적 차원의 기후 변화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라니냐가 야기할 경제적 충격파다. 라니냐로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등 세계 주요 곡창지대에 가뭄ㆍ저온 현상이 강타할 경우 2010~2011년 발생한 국제곡물가격 폭등 현상이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 7월 라니냐가 발생하고 12개월 가량 지난 뒤부터 미국 시카고 곡물시장에서는 밀 가격이 이전보다 21%, 콩은 39%, 원당은 67%나 상승한 바 있다.
뉴욕 월가의 유명 선물ㆍ옵션 투자회사인 CME그룹의 에릭 놀런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후반기부터 라니냐가 등장, 옥수수와 밀, 콩의 국제가격이 급격히 변동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계적 경제분석기관인 BMI 연구소도 라니냐가 발생하면 한국이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옥수수와 콩, 밀, 원당, 면화, 커피 국제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라니냐 파장이 곡물가격을 넘어 에너지 가격 전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도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라니냐로 미 대륙의 겨울 기온이 크게 하락하면서 난방용 수요의 급증으로 국제 원유가격이 높아졌던 사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신문은 “오랜 기간의 가격 안정으로 국제 곡물시장에는 표면적으로 불안 요소가 감지되고 있지는 않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라니냐 발생에 따른 변화에 맞춰 투자행태를 수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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