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방의 딜레마… IS 박멸하려면 내전 원흉 아사드가 필요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서방의 딜레마… IS 박멸하려면 내전 원흉 아사드가 필요해

입력
2015.12.24 19:36
0 0
지난달 미국의 폭격을 받은 시리아 북부 도시 코바니에서 화염과 검은 먼지가 치솟고 있다. 코바니(시리아)=AP
지난달 미국의 폭격을 받은 시리아 북부 도시 코바니에서 화염과 검은 먼지가 치솟고 있다. 코바니(시리아)=AP

서방이 시리아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격퇴 문제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IS 격퇴를 위한 전제로 지상군의 필요성이 절대적으로 커졌는데 그 역할을 맡아줄 조직이 사실상 시리아 정부군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방은 시리아 내전을 일으킨 전쟁범죄 주범인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퇴진시키지는 못할 망정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은 최근 잇따라 아사드 정권의 연장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IS 격퇴를 위해 아사드 정권을 인정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IS 격퇴를 포기하더라도 아사드 정권을 퇴진시켜야 하는지 서방은 기로에 다가섰다. 시리아의 운명은 서방국들의 선택에 달려있는 상황이다.

IS 격퇴 위해 시리아 정부군 도움 필수적

지난달 29일 시리아 북서부의 이들리브 주에 위치한 소도시 아리하에 러시아 공군이 대규모 공습을 퍼부었다. 과일인 체리 산지로 유명한 아리하에는 휴일인 일요일을 맞아 시장에 나온 시민들로 북새통이었다.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가 아리하 상공에서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 것은 단 몇 초에 불과했다. 곧 하늘에서 폭탄이 비오 듯 쏟아졌다. 시장에 채소와 고기 등을 팔러 나온 상인들과 모처럼 나들이 나온 가족들은 폭탄이 떨어지는 사실도 모른 채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당시 목격자는 “폭격으로 사지가 잘린 시신들이 공중으로 치솟고 아이들은 부모를 찾으며 울부짖었다”라며 “한 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시리아에서 이런 참혹한 풍경은 드문 일이 아니다. 미국은 시리아 지역에서 IS 격퇴를 목적으로 대규모 폭격을 벌여왔으며 러시아는 올해 9월 30일부터 공군을 동원해 공습을 이어오고 있다. 더욱이 지난달 13일 전세계를 경악하게 한 파리 테러 이후에는 유럽 국가들도 시리아 공습에 동참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달 4일 이동하는 공군기지인 핵 항공모함 샤를드골함을 페르시아만에 파견했고, 독일은 공중급유기 등을 보내 프랑스의 공습작전을 지원했다. 영국 정부도 이달 3일 시리아 공습 안에 대한 의회 승인을 받아냈다. 전세계 강대국들이 몰려들면서 시리아 전역이 매일 불바다로 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공습작전이 IS 격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반드시 충족돼야 할 전제가 있다. 바로 IS 거점에 대한 대규모 공습 이후 초토화된 지역을 곧 바로 점령지로써 수복할 전력을 갖춘 지상군이다. 공습을 통해 IS를 쫓아낸들 해당 지역을 물리적으로 점령할 수 없으면 결국 IS에 도로 뺏길 수밖에 없고, 실익 없이 무고한 시민들의 살상만 초래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지상군 역할을 맡아줄 세력이 시리아에서는 아사드 대통령이 보유한 시리아 정부군밖에 없다는 데 있다.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은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면서 시리아로의 지상군 파견에 주저하고 있다. 서방은 현재 온건 반군을 지상군으로 운용하려고 하지만 IS에 비해 현저히 전력이 약한데다, 온건 반군 세력 들 간에도 수십 개의 종교적 분파와 지역 토호 세력 등으로 나뉘어져 대립하고 있어 정규군으로 편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시리아 온건 반군 세력은 총 7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시리아 북부에 있는 반군 조직인 ‘아흐라르 알 샴(Ahrar al-Sham)’이 약 1만5,000명, 수도 다마스쿠스 북부 인근을 장악한 조직인 ‘자이쉬 알 이슬람(Jaish al-Islam)’이 약 1만2,500명, 이슬람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누스라 전선(Nusra Front)’이 6,000~1만명 등으로 세력을 나눠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시리아에서 IS의 거점 지역을 장악할 만큼 전력과 조직력을 갖춘 집단으로는 시리아 정부군이 거의 유일하다는 분석이다.

시리아 출신 여성들이 2013년 8월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는 국제연합인 유엔 건물 앞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화학무기 공격을 가한 것을 비판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이루트=AP
시리아 출신 여성들이 2013년 8월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는 국제연합인 유엔 건물 앞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화학무기 공격을 가한 것을 비판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이루트=AP

서방, IS 격퇴 위해 아사드 정권 용인할 뜻 보여

하지만 아사드 대통령은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해 반정부 세력을 유혈진압 하면서 시리아 내전을 일으킨 주범이다. 수년 째 이어진 내전으로 시리아에서는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해 유럽은 올해 심각한 난민 유입 사태를 겪기도 했다. 특히 시리아 정부군은 2013년 8월21일 반군이 점령 중인 다마스쿠스 인근 지역에 국제적으로 금지된 화학무기 공격을 벌여 반군과 시민 등 약 1,300명이 사망했다. 반군은 시리아 내전을 해결하기 위한 단초로 진행되는 평화회담에서 가장 우선적인 평화 조건으로 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해왔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IS 격퇴를 위한 발판으로 시리아 정부군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결국 아사드 대통령의 정권유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실제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주장해왔던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IS 격퇴를 위해 시리아 정부군의 지원이 필수적인 것으로 분석됨에 따라 점차 자신들의 기존 입장을 철회하는 양상이다.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지난달 27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IS와 싸우는 방법은 폭격과 지상전 두 가지가 있다”라며 “지상군에는 우리(서방국가들)가 아니고 시리아 반군이 참여하는데 시리아 정부군이라고 안 될 이유가 있느냐”고 강조했다. 아사드 정권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던 프랑스 정부가 파리 테러 발생 이후인 이날에는 기존 입장을 뒤집어 아사드 정권과 협조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이달 1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한 뒤 “미국과 미국의 협력자들은 시리아에서 알려진 것처럼 이른바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케리 장관이 올해 9월 19일 런던에서 시리아 난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후 연 기자회견에서 “아사드 대통령의 퇴진 문제와 관련해 그 시기와 조건을 협의할 수 있다”고 밝힌 것보다 훨씬 더 아사드 정권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케리 장관은 이달 3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의에서 “공습만으로는 IS 퇴치가 불가능하다. 지상에서 싸울 시리아와 중동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르슐라 폰 데어 레이엔 독일 국방부 장관은 최근 시리아에서 지상군 확보를 위해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싸움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IS 격퇴를 위한 단일대오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이 14일 프랑스 파리 외무부에서 열리는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이 14일 프랑스 파리 외무부에서 열리는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아사드 대통령의 속셈은

아사드 정권은 이슬람에서 시아파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수니파 테러단체인 IS를 공격할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만한 전투력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때 시리아 정부군이 오합지졸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지난 2년 동안 시아파인 이란의 혁명수비대, 이라크 군대, 레바논의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조직원들이 속속 참여하면서 점차 정규군으로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시리아 정부군은 수니파에 대항하는 시아파 연합군 형태를 띠고 있다”라며 “반군을 무찌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사드 정권이 패배하지 않을 만큼의 전력은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아사드 대통령은 IS를 시리아에서 몰아낼 생각이 없다는 게 정설이다. IS를 통해 아사드 대통령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득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골칫거리인 반군을 몰아내는 데 IS의 도움을 얻을 수 있고, IS를 지렛대로 아사드 정권의 정당성을 서방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사드 대통령은 IS가 장기간 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IS는 자금난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조직원 포섭 등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시리아 반군을 무찌르고 IS 세력까지 축소되면 시리아에 펼쳐질 무주공산에 아사드 대통령이 손쉽게 깃발을 꽂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IS의 입장에서도 반군 격퇴라는 공통된 목표는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시리아 국민의 70% 이상은 수니파로 분류되는데 반군을 몰아낼 경우 그 혼란상황에서 더욱 많은 젊은이들이 IS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최근 “시리아 정부군은 IS와의 군사협력을 통해 지난해 북부에 있는 소도시 탈 리파아트 등 반군 거점 지역 수십 곳을 공격했다”라며 “양측의 협력체제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IS 격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아사드 정권 편에 서서 반군 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달 17일 모스크바에서 가진 연말 기자회견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지상전이 계속되는 한 IS 근거지에 대한 러시아 공습작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서방은 러시아의 공습 목표가 대부분 IS와는 동떨어진 반군 거점 지역인 것을 확인한 상태다.

결국 지금과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경우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는 IS 격퇴는 달성할지 몰라도 수년 간 시리아 난민 수백만 명을 발생시키며 인류에 재앙적 범죄를 저지른 아사드 대통령을 용서한다는 뜻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서방은 ‘IS 격퇴 또는 아사드 정권의 퇴진’이라는 선택지 가운데 결국 하나를 골라야 할 것”이라며 “시리아 문제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