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아는 밴드의 공연을 보고 나서 우르르 몰려 술을 마셨다. 홍대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저기서 캐럴이 흐르고 불빛들이 반짝거렸으나 때 아닌 운무 탓에 시야가 온통 뿌옇기만 했다. 공연 뒤풀이가 늘 그렇듯, 술판이 그리 차분하지 않았다. 흥이 오른 것도 화가 난 것도 아닌 이상한 흥분상태가 지속됐다. 1차를 마친 다음 북새통을 뚫고 거리를 걸었다. 일행은 10명 남짓. 두어 명씩 짝을 지어 이동하는 중간 일행을 놓쳤다. 인파에 떠밀려 한 팀은 지하철 역 부근, 다른 한 팀은 홍대 정문 쪽으로 제각각 흩어졌다. 딱히 정해 놓은 장소가 없던 탓. 요란한 거리에서 이상한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헤맬수록 추위가 심해졌다. 속살까지 스민 습기와 한기로 내장까지 차가워지는, 매캐한 추위였다. 무슨 요원들처럼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수색전을 펼쳤다. 안개 속의 인파가 뚫고 나가야 할 장막처럼 여겨졌다. 캐럴이 패잔병의 위로곡처럼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었으나, 흐린 시야 탓에 그 얼굴들이 다 기괴했다. 어떤 참지 못할 슬픔을 짓누르고 있는 듯 억지스러워 보였다. 40여 분 헤매다가 상수역 근방에서 모두 합류. 한바탕 전쟁을 치른 얼굴들이었다. 즐기러 나왔는데, 다 슬퍼 보였다. 길 잃은 양들, 다 모였나. 누가 이기죽댔다. 실소마저 안개 속에서 뿌얬다. 잊히지 않는 이브날 풍경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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