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의회, 운영비 전액 삭감… 1월부터 상근자 3명 월급도 못 줄 판
1982년 노벨문학상 최종심까지 오른 중편소설 ‘을화(乙火)’, 그리고 무녀도와 등신불, 사반의 십자가 등 세계인들로부터 환영 받은 작품을 써 낸 소설가 김동리(1913~1995). 송아지 뻐꾸기 등 자연과 교감하며 향토적 서정을 읊어 ‘국민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은 청록파 시인 박목월(1915~1978). 이들 경주 출신의 걸출한 두 문인을 기념하기 위한 동리목월문학관이 내년부터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경주시의회가 문학관 관리 및 운영에 필요한 예산 4억 원을 모두 삭감했기 때문이다.
문학관과 경주시 등에 따르면 24일 폐회한 경주시의회 정례회에서 경주시가 제출한 1조920억원의 내년 예산안 중 132건 80억8,800만원을 삭감해 예비비로 돌리면서 동리목월문학관 관련 예산도 전액 삭감했다.
삭감된 예산은 내년 동리목월문학제 개최 지원비 1억8,000만 원, 한국-터키 문학심포지엄 개최비 1억 원 등 사업예산은 물론 상근직원 3명의 인건비가 포함된 위탁관리비 1억1,900만원까지 모두 3억9,900만원 전부다.
문학관 측은 자체 수입이 거의 없이 경주시 지원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예산지원이 중단되면 당장 1월부터 직원 월급과 전기, 수도요금 등 관리비도 체납할 위기에 처했다. 문학관 측은 당장 예산이 지원되지 않으면 당분간 문학관 운영을 중단하는 방안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시가 경주시 진현동에 건립한 동리목월문학관은 2006년 3월 개관 후 1년 6개월간 경주시가 직영하다가 2007년부터 동리목월사업회가 도ㆍ시비를 지원받아 위탁운영 해 오고 있다. 문학관에는 두 문인의 자필 원고 200여 점과 고인들이 평소 집필하던 책상과 의자, 기타 유품 및 도서 4,5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전국의 문인들은 물론 각급학교 문학동아리 회원, 일반관광객 등 지난 한해 동안에만 4만5,000여명이 다녀가는 등 경주 문학의 성지로 부상했지만 폐쇄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시의회가 예산 전액을 삭감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두 문인의 유품에 대한 기탁증서를 제때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시의회는 예산심의 과정에 기탁증서 제출을 요구했고, 본회의 통과 이전에 기탁서를 제출했지만 예산 삭감을 막지 못했다.
기탁서 제출에도 불구하고 예산이 삭감된 데에는 경주문인협회와 동리목월기념사업회 간에 문학관 운영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라는 소문도 파다하다.
지역 문화계에서는 “경주시의회가 기탁서 미제출이라는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몽니를 부리다가 기탁서를 제출해도 결국 삭감한 것은 일종의 갑질로 비춰질 수 있다”며 “만약 내년에 문학관을 찾은 전국의 문인들에게 문학관 문을 닫은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한 문화계 원로도 “우리나라 근대 문학의 대들보나 다름없는 동리목월선생의 문학관에 대한 예산을 사소한 이유로 시의회에서 전액 삭감한 것은 문화의 도시 경주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김성웅기자 k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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