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전만 해도 죽은 시장으로 취급 받던 크리스마스 캐럴 시장이 다시 활활 타올랐던 12월이다.
엑소·소녀시대 태티서·에프엑스·레드벨벳 등 SM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가수를 총동원해 크리스마스 노래를 발표했다. 씨스타·케이윌의 스타쉽엔터테인먼트도 24명 가수들이 모여 겨울송 '사르르', 서인국·빅스의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는 '사랑난로'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살렸다.
이 뿐만 아니다. 2PM의 택연은 직접 작사, 작곡한 캐럴 '비 마이 메리 크리스마스(Be My Merry Christmas)'를 들려줬고 이문세는 로이킴과 함께 '디스 크리스마스(This Christmas)'를 부르는 등 올해 유독 캐럴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 죽었던 캐럴 시장
캐럴 음반은 한때 황금알을 낳는 효자였다.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 앨범은 전세계 1,000여 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어김없이 캐럴 음반이 호황을 누려왔다. 당대 인기 가수들은 물론이고 개그맨 심형래가 코믹 캐럴의 원조격으로 나타나 매년 일정 수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뒤따라 개그맨이 캐럴 음반을 내는 게 유행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접어들어 음반 시장이 기울며 캐럴 앨범도 시들해졌다. 불법 다운로드가 기승을 부리며 음악 시장 자체가 축소되다 보니 제작자들도 캐럴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한철 장사인 캐럴 앨범에 새롭게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같은 흐름은 약 10년간 지속됐다. '캐럴 실종 시대'라고 불리며 예전 캐럴을 재포장해 만든 컴필레이션 정도만 나돌았다. 또 음원 제공업체들이 2006년 바닥면적 3000㎡ 이상인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에 대해 음악 사용료 소송을 줄지어 제기하며 위축됐다. 그렇게 캐럴 시장은 침몰됐다.

■ 왜 다시 살아났나
음반 시장의 몰락, 경기침체와 맞물려 캐럴을 멀리했던 소비자들의 핵심적인 정서는 '반짝하고 말 것을 왜 사나'였다. 그러나 음원 시장이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 중심으로 흘러가며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싼 가격에 반짝 들어도 부담이 없어지면서 인기가 높아졌고 다시 '제작붐'이 일어났다.
소장 대신 소비 형태로 바뀐 스트리밍 시대에 음원 생명력은 2주 정도. 보통의 신곡과 캐럴의 생명력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된 셈이다. 그 사이 불법시장이 줄어들고 있는 흐름도 캐럴 제작의 힘을 보태면서 2010년 무렵부터 탄력을 받았다.
또 음반에 비해 음원은 비수기가 따로 없다는 교훈도 캐럴 발매에 대한 동력을 키웠다. 연말 행사와 각종 시상식이 많은 12월은 가요계에서 월드컵·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와 같이 피해야 할 산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전 세계를 흔들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이 한창 열리던 시기에 발매됐고, 소유·정기고의 '썸'역시 2014년 소치 올림픽 때 발표돼 세태를 대표하는 곡으로 성공을 거뒀다.
주요 기획사들의 나아진 형편도 한 몫했다. SM엔터테인먼트나 YG엔터테인먼트 등은 올해 일제히 2,000~3,000여억 원 매출을 올리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앞두고 있다.
한 가요 관계자는 "연말 공연이 많은데 캐럴은 새로운 무대를 펼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다. 수익성을 떠나 1년간 성원을 보내준 팬들에 대한 선물 차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 진화하는 캐럴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획사들은 캐럴을 다각도로 진화시키는 중이다. 표현부터 '시즌송'이라고 범위를 넓혀 접근하고 있다.
10년간 엔진이 꺼졌던 상태이기 때문에 옛 캐롤에 대한 식상함을 깨려는 의도도 숨어있다. '징글벨' '실버벨'만 캐럴이 아니라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노래들은 '새 캐럴'이라고 봐야 하지만 '시즌송'이라고 옷을 갈아입혔다.
멜로디나 가사 역시 고전 캐럴과 거리를 뒀다. 널리 알려진 캐럴들은 대부분 저작권(사후70년)이 소멸돼 리메이크가 자유롭다. 멜로디나 가사를 가져다 쓰더라도 신곡의 수익구조와 같다. 그래도 공을 들여 새 캐럴을 만드는 추세다.
캐럴 앨범에 힘을 주는 정도 역시 정규 앨범을 방불케 한다. 보통의 앨범 제작비와 다를 바 없이 5,000~6,000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엑소의 '싱포유'는 한국어·중국어, 두 버전과 함께 더블 타이틀 곡을 앞세웠다. 소녀시대 태티서도 미니앨범 형태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사르르'와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의 '사랑난로'는 뮤직비디오까지 영화처럼 제작했다.
상업적인 이득만 바라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사르르'의 수익 상당부분을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심재걸 기자 shim@sporbiz.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