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1세 군대에 수도 빈까지 점령 당하는 수모를 당하던 끝에 간신히 위세를 회복했지만, 시민들은 이미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새로운 기운을 맛본 뒤였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다민족국가 오스트리아 제국은 불안정했다.
1818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인근 오베른도르프 (Oberndorf)라는 마을 성니콜라스 성당의 26살 사제 요제프 모어(Joseph Mohr)는 크리스마스 미사를 준비하며 뭔가 색다른 일을 벌여보자는 생각을 품게 된다. 마을 주민들과 다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거였고, 교회 오르간 반주자인 이웃 마을 교사 프란츠 그루버(Franz Gruber)와 의기투합한다. 모어는 고향 마리아파에서 보좌신부로 일하던 때 써둔 노랫말을 그루버에게 건넸고, 그루버는 24일 기타 반주에 맞춘 6/8박자 악보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날 크리스마스 이브 미사에서 기타 반주로 저 노래가 처음 불려졌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등을 배출한 세계 음악의 수도가 인류에게 선사한, 가장 유명한 캐롤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원제 Silent Night)’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긴 전쟁과 불안한 정정에 지친 시민들에게 저 노래는 위로의 자장가 같았을 것이다.
노래는 금세 독일로, 전 유럽으로 번져갔다. 미국 뉴욕 트리니티교회 성공회 신부 프리먼 영(Freeman Young)이 저 노래 가사를 영어로 옮겨 1859년 크리스마스 직전 교회 회보에 소개했고, 이후 노래는 세계인의 캐럴이 됐다.
1914년 12월 24일, 영국군과 독일군이 참호를 파고 대치하던 벨기에 이프르 전선에서 독일군 한 병사가 저 노래를 부르자 영국군들이 따라 부르게 됐고, 합창이 끝난 뒤 양측 지휘관이 즉석에서 정전 약속을 맺는 일이 생겼다. ‘크리스마스 정전’으로 알려진 저 기적 같은 평화는 1차대전 서부전선 곳곳에서 약속이나 한 듯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 짧게는 2,3일 길게는 일주일 넘게 지속되기도 했다. 합심해서 급조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전선 곳곳에 섰고, 친선 축구경기가 열린 곳도 있었다고 한다.
1995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원본 악보가 모어의 원고 뭉치에서 발견됐는데, 원곡의 박자는 지금보단 경쾌하고 발랄했다고 한다. 그러니 노래를 더 나직하고 경건하게 부르게 한 건 19~20세기의 역사였다.
/성니콜라스 성당은 1937년‘고요한 밤 성당(Stille Nacht Kapelleㆍ사진)’으로 이름을 바꿨고, 2011년 유네스코는 ‘Silent Night’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