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허무하게 한 해 마감하는 남북관계
북중ㆍ북미 관계 악화로 북 고립 심화
교착국면 깨는 우리 주도적 노력 절실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한다는 약속을 보여주면 모든 게 가능하다.”(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국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미국이 시대착오적 적대시 정책에 계속 매달린다면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뿐.”(북한 외무성 대변인)
얼마 전 북한과 미국이 주고 받은 대화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비핵화에 대해 영혼 없는 답변으로 일관해온 미국이나, 심사가 뒤틀리면 공갈 협박부터 하고 보는 북한의 태도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이런 소모적 발언을 들으며 또 다시 한 해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할 뿐이다.
김정은 북한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간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번에는 뭔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미군사훈련을 앞두고 긴장 수위가 높아지더니 급기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무력충돌 일보직전까지 가는 근래 최악의 상황으로 급전직하했다. 8ㆍ25 고위급 접촉을 통한 위기 봉합과, 이후 이산가족 상봉과 당국회담 재개를 그나마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예측할 수 없는 건 북중관계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3차 핵실험과 장성택 처형으로 냉랭해진 양국은 중국 전승절 때 반전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막판 불참을 결정하면서 기회가 무산됐다. 류윈산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의 평양 방문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추가 핵실험 위협 등으로 불협화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지난달 북한 모란봉악단의 베이징공연 전격 취소는 혈맹관계라는 양국의 균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냉ㆍ온탕을 오가긴 했지만 남북과 북중이 관계개선의 실마리라도 찾고자 했던 것과 달리 북미관계는 그야말로 단절의 한 해였다. 아시아재균형 전략을 들고 나온 이후 미국은 비핵화 사전조치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을 뿐 북핵 협상에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북한이 소형화한 핵탄두를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 실전배치했다”는 윌리엄 고트니 북부사령관의 증언을 필두로 실체 없는 ‘북한위협론’을 강조하는 당국자들의 발언이 줄을 이었다.
미국이 대화보다 긴장 조성으로 방향을 튼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국을 견제하고 이를 위해 일본과의 군사일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동북아위협의 구실로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보다 북한 위협을 부각하는 것이 국익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한 미국이 대화를 외면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북미관계 정상화를 체제보장의 중요한 해법으로 간주하는 북한이 이런 미국에 달리 무슨 선택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며칠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징후를 찾지 못했다는 조사보고서를 승인, 대(對)이란 경제제재 해제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란 정부에는 평화적인 목적으로 핵기술을 연구ㆍ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핵주권’도 보장했다. 한 때 미국의 핵시설 공습설까지 나왔던 이란핵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전될 수 있었던 요인은 한가지다.
미국이 핵폐기를 고집하지 않고 이란의 핵동결과 핵무장 지연으로 협상 전략을 바꾼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에 왜 이런 ‘특혜’를 줬는지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핵 위협의 실체보다 위협을 전략적 차원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결정적 변수라는 점이다. 이슬람국가(IS)의 발호로 초래된 중동의 정세변화가 없었다면 미국의 이란핵 해법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북핵 협상에 적극 나서도록 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미국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이 한 편이 돼 중국과 맞서는 지금의 동북아 구도에서는 미국을 움직이기 어렵다. 이런 구도를 깨는 한 방법이 유명무실화한 6자회담을 다시 회생시키는 것이다. 금강산관광과 이산가족 상봉을 동시에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얼굴을 붉힐 게 아니라 보다 큰 그림에서 대북교류를 추진하는 전략적 구상이 있어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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