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에 대한 기부 봉쇄는 지나쳐"
헌재, 금지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정당이 후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기부 받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땐 처벌토록 한 현행 정치자금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정당의 활동과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취지다. 2017년을 개정 시한으로 정해 내년 총선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내후년 대선 이전에는 이른바 ‘차떼기’ 사건의 여파로 2006년 사라졌던 정당 후원회가 부활할 전망이다. 개인 후원회를 통하기 어려운 소수 정당들이 이번 헌재 결정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는 23일 정치자금법 45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 대 1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다만 헌재는 위헌결정을 내릴 경우 법적 공백이 우려된다며 2017년 6월 30일을 개정시한으로 정했다.
정치자금법 6조는 정치인 개인이 후원회를 두고 정치자금을 기부 받을 수 있도록 했으나, 정당은 후원회 자체를 둘 수 없도록 했다. 또 같은 법 45조 1항에선 국회의원이나 선거 후보자가 아닌 정당 등의 단체가 정치자금을 받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했다.
헌재는 우선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인한 정경유착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정당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나 정당후원회 제도를 일정 범위에서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해도, 정경유착은 일부 재벌기업과 부패한 정치세력에 국한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대다수 유권자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므로 일반 국민의 ‘정당’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를 원천 봉쇄할 필요는 없다”면서 “해당 조항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정당 후원회 제도 폐지 이후 각 정당들이 국가보조금에 의존하는 추세가 증대되는 현상에도 주목했다. 헌재는 “과도한 국가보조는 국민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노력에 실패한 정당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위험부담을 국가가 상쇄하는 것으로, 정당 간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며 정당 후원 금지의 폐해를 지적했다.
헌재는 이어 “해당 조항이 보호하려는 공익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 통로인 정당 후원회를 금지함으로써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인한 정경유착을 막고 정당의 정치자금 조달의 투명성을 확보해 정당 운영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에는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정당제 민주주의 하에서 정당에 대한 재정적 후원이 전면 금지돼, 정당이 스스로 재정을 충당하고자 하는 정당활동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불이익은 더욱 크다“고 밝혔다. 이어 “정당 후원회 제도 자체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기보다는 기부 및 모금한도액의 제한, 기부내역 공개 등의 방법으로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당후원회 제도는 1980년 도입됐다가 2004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되면서 2006년 폐지됐다. 옛 진보신당의 전 사무총장 이모(54)씨 등 10명은 ‘후원당원’ 제도를 이용해 노동조합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기부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벌금형이 확정됐다. 이에 정치자금법 제6조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냈지만 기각 당하자 헌법소원을 냈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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