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믿기 어려웠다, 통일대박이란 말을. 본질적으로 통일은 민족중흥의 기회일 수 있지만 특정 정권이 그렇게 포장하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통일을 무슨 노다지 찾는 일로 보거나 그런 말에 국민들이 솔깃해할 거라는 발상도 불쾌했다. 정부에 통일 전담 부처가 있고 대통령의 주요 직무가 “평화적 통일” 준비인데, 별도의 친위 조직을 만든 것은 권위주의적 발상이었다. 통일대박론이 대박 났는지 쪽박 났는지는 이제 누구나 알 수 있다. 늘어난 건 관변 통일 행사와 통일부 장관의 축사뿐이다.
박근혜정부의 비주체적인 역사인식이 잘 드러낸 대목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에 앞서 ‘분단 70주년’이라는 말이다. 해방 되자마자 분단이 되었다는 기막힌 분단 70주년론은 분단의 정의와 기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정권 스스로 차단하고, 1945년을 분단 원년으로 ‘국정화’ 한 것이다. 미국, 러시아가 그렇게 말한다 해도 적어도 우리는 1945~48년을 통일독립국가 수립 과정으로 보는 게 맞지 않는가. 아니면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이라는 식의 관료주의적 발상인가. 좋다. 그렇다면 ‘분단 70주년’을 외치며 지금까지 한 일이 무엇인가? 서울 시내 일대에 나붙은 통일 포스터와 학술회의 지원금은 통일에 이바지 하였는가 아니면 예산 소모용이었나.
정부의 분단에 대한 비주체적 역사인식은 책임 회피성 현실인식과 분단 기여성 정책으로 이어진다. 올 한해 남북관계를 되돌아보면 평화와 통일을 다같이 태평양으로 밀어 보낸 꼴이다. 북한의 핵무장 능력은 높아졌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이어져온 ‘전략적 인내’의 결과다. 대화를 보상으로 간주해 6자회담 재개에 소극적인 대신, 5자에 의한 북한 압박을 허망하게 추구했다. 남북 당사자 원칙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대화 분위기 조성에 실질적인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2015년 남북관계의 대미는 12월 12, 13일 있었던 차관급 회담의 결렬이었다. 이후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관련 발언은 귀를 의심케 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대표로 하는 인도주의는 보편적 가치이고, 남북간 공감대가 이미 있어 신뢰 조성의 계기이고, 박근혜정부도 “남북 간 정치적 상황에 관계없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혀온 터였다. 가족을 남겨두고 내려온 이산가족들은 천추의 한을 지고 세상을 등질 날만 기다려야 하는가. 홍 장관은 인도주의를 희생하면서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 적어도 인도주의보다는 더 고상해야 하지 않겠는가.
통일을 말하지 말고 분단 속의 평화, 평화로운 분단을 살아가자는 취지는 이렇다. 북핵문제의 악화를 비롯해 안보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남북 간 대결과 불신은 줄어들지 않고, 인도주의마저 희생되고, 통일문제가 국민의 삶과 동떨어져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가 속한 연구원이 매년 수행하고 있는 ‘통일의식조사’는 국민들의 북한 인식이 다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동포이자 적이라는 이미지로 다가오는데, 이 모순적인 이미지를 취사선택하면 남북 간은 물론 국내적으로도 심각한 갈등을 초래한다. 이 둘의 균형이 중요하지만 둘의 긴장을 제어하기 힘들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친구 혹은 이웃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도 형성하고 있다. 개성이 고향인 친구 어머니도 통일보다는 그냥 사이 좋게 지내며 오가고 돕고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솔직히 지난 몇 년 간의 남북관계와 정부의 대북정책을 보면서 관련 예산을 대학생 등록금 보조나 어르신 복지비로 돌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이다. 분단을 명목으로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작태는 종식시켜야 하지만, 분단 하에서 사이 좋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노력도 기울여 가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가능하지도 않은 통일을 갖고 국민을 농락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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