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신청 단계서도 상당수 탈락
지자체장, 기재부 방문해 읍소
담당과에 직원 보내 출근도장도
총선 앞두고 의원들 입김 거세
국회, 심사 절차 완화 논의 중
“본선보다 예선 통과하는 게 훨씬 힘듭니다.”
매년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대상 선정 결과에 대규모 공공사업을 학수고대하는 지자체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500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되는 공공사업을 대상으로 사업성 등을 심사하는 예타조사를 하는데, 예타대상 사업 선정이라는 ‘예선전’을 통과해야 본격적인 조사를 받을 수 있다. 추진 사업이 조사 대상으로도 선정되지 못한 지자체 등은 “예선부터 너무 팍팍한 기준을 적용한다”며 정부를 원망하고 있다.
예선이 본선보다 치열하다는 건 수치로 확인이 된다. 22일 기재부에 따르면 올 하반기에 예타 대상에 선정된 사업은 총 23건으로, 신청 사업 40여건 가운데 절반 가량만 간신히 예선을 통과했다. 예타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사업 관련 정부부처를 먼저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상당수의 사업이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한다. 반면 본선에서는 작년 44건 가운데 35건(79.5%)이 무사 통과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수백억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보다 엄격하게 심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경제성 등을 따져볼 때 말도 안 되는 사업들 절반 가까이를 매년 탈락시킨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 등에서는 “나중에 떨어져도 좋으니 예타만이라도 받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지자체가 나오는 실정이다. 지자체장이 직접 기재부를 찾아와 읍소를 하거나 심사 대상을 선정하는 심사 기간에 몇 달 동안 직원을 담당과에 보내 출근 도장을 찍게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번에 청주시에서 추진하는 ‘청주해양과학관 건립사업’이 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이 됐는데, 이시종 충북지사가 직접 기재부를 꾸준히 설득한 결과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기재부 고위직을 상대로 직접 나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사업을 유치했다는 것만큼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들이 치적으로 내세우기 좋은 게 없지 않느냐”며 “특히 올해처럼 총선을 앞두고 있으면 국회의원들이 입김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예타만 받을 수 있다면 본 조사에서 떨어져도 “정부가 발목을 잡았다”는 식으로 책임을 미룰 수도 있다는 점도 지자체들이 예선 통과에 목을 매는 이유다.
국회에서는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 절차를 완화하는 법안을 두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조사대상 사업 금액 기준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하는 것과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맡고 있는, 본선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 사업 타당성 분석ㆍ조사 기관을 복수로 하는 법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특히 분석 조사 기관을 복수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며 “정부로서는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예비타당성 조사는 엄격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세종=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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