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작가 래리 커해너(Larry Kahaner)는 ‘워싱턴포스터’에 기고한 글에서 ‘이라크에서 미국이 찾던 대량살상무기WMD가 드디어 나왔다. 젊은 미군 병사 3,000명을 저 세상으로 보낸 WMD는 핵무기가 아니라 낡은 소련제 AK-47소총’이라며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전성원 지음, 인물과사상사.
“세계 최강 살인 무기” AK-47을 만든 미하일 칼라시니코프(Mikhail Kalashnikov, 1919~2013)가 2년 전 오늘(12월 23일) 숨졌다. 기계 설계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그는 2차대전 직후 독일군의 신형 돌격소총에 맞설 무기로 47년 저 총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소련군은 49년 AK-47을 군 개인화기로 채택했다.
AK-47은 구조가 단순해서 고장이 적고, 작동 방법이 간편해서 아이도 금세 쓸 수 있는 무기로 알려져 있다. 저 무기가 냉전과 내전의 바람을 타고 중동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들로 대량 흘러 들어가 지금도 가장 보편적인 개인 화기로 사용되고 있는 까닭은 소련과 동구권 패망으로 무기 관리체계가 붕괴된 탓이 크지만, 무엇보다 구하기 쉽고 쓰기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데뷔 초기 반동이 크고 정밀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후 그 문제점들도 지속적으로 개량됐다고 한다. 위 책에는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이 소총 한 자루를 닭 한 마리 값밖에 안 되는 30달러 이하에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칼라시니코프는 AK-47로 레닌훈장 등 수많은 훈장을 탔다. 고향 쿠루야에는 그의 동상이 섰고, 94년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종신 육군중장 계급을, 2009년에는 영웅 칭호를 받았다. 다만 미군 개인주력화기인 M-16을 개발한 유진 스토너가 갑부가 된 것과 달리,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구 소련 출신의 그는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민영화한 옛 조병창 이즈마쉬 사의 수석디자이너로 말년까지 AK-47 개량 작업을 지속한 건, 일이 좋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생전의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의 작품은 내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나의 작품이다. 난 조국을 방어하기 위해 이 소총을 발명했다. 오늘은 그것이 자유와 동의어가 되었고, 나는 이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부끄럽지 않으며 매우 잘 자고 있다(sleep soundly)”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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