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제 여의도로 돌아간다. 18개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에 그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지 손익계산서를 따져보기로 했다. 관료사회와 국민들의 평가가 전직 어떤 부총리보다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정치인 최경환’에게는 부총리 재임 기간이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했다.
우선 최 부총리는 인사(人事)에서 엄청난 ‘흑자’를 낸 것으로 보인다. 최 부총리가 경제계, 금융계 인사에 미쳐온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오죽했으면 모든 인사는 최경환을 통해야 한다는 ‘만사경통(萬事炅通)’이라는 얘기까지 나왔을까. 공공기관장이나 금융회사 수장, 임원, 심지어 감사가 임명되는 경우에도 최 부총리 대구고 후배라더라, 혹은 연세대 동문이라더라 하는 얘기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물론 어떤 것은 마타도어일 수도, 어떤 것은 ‘카더라’ 수준의 과장된 추측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사에서 그의 영향력을 실제로 가늠할 수 있는 것들은 충분히 많다. 기획재정부 식구들을 대거 요직에 앉힌 것이 최 부총리의 힘이라는 건 기재부 공무원들조차도 부인하지 않는다. 기재부 일각에서 “역대 최고의 부총리”라는, 국민 정서와는 다른 찬사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는 않을 테다. 최 부총리의 의원 시절 인턴이 중소기업진흥공단에 특혜 채용됐다는 논란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진짜 최 부총리가 채용 청탁을 했든, 최 부총리 주변 인물들의 작품이든, 그것도 아니면 중진공에서 알아서 긴 것이든 결국 최 부총리를 등에 업은 인사임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세상에 공짜 선물이 있을까. 최 부총리는 그 막강한 힘을 이용해 언젠가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씨앗을 곳곳에 뿌려둔 셈이다.
최경환이라는 이름 석 자의 인지도 상승 효과도 엄청날 것이다. 감옥에만 가지 않으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국민들에게 각인되는 것이 좋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정치인의 생명은 인지도다. 지금까지 경제부처 수장 자리를 지낸 이들을 읊어보라면 머리를 긁적일 이들에게도 최경환이라는 이름만큼은 뇌리에 깊이 박혀 있을 공산이 크다. 한 경제지가 집요하게 밀어붙여 공용어로 만들어버린 ‘초이노믹스’(최경환의 경제정책)란 조어도 톡톡히 기여를 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빚 내서 집 사라”는 것 외에 딱히 그만의 경제철학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경제성적표도 최 부총리에게 마이너스는 아니었다고 본다. 그토록 매달렸던 3% 성장률 달성에도 실패했고, 수출마저 급격한 내리막을 걷고 있음에도 모든 책임을 그에게 씌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외환경 탓”이라는 그의 말이 무책임한 변명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들 이보다 좋은 성적표를 내긴 쉽지 않았던 것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신 본인이 펼쳐놓은 각종 정책의 후유증은 후임에게 모두 떠넘겼다. 가계부채 폭탄, 집값 급락 등 향후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이미 발을 뺀 그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은 거의 없어 보인다. 후임이 같은 ‘친박’의 울타리 안에 있는 유일호 후보자이니, 그를 밟고 지나갈 일도 없을 것이다.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건, 이처럼 온통 흑자로만 채워진 최 부총리의 손익계산서와는 달리 정작 대한민국 경제의 객관적인 손익계산서는 여기저기 적자투성이라는 점이다. 최 부총리에게 경제 사령탑의 임무를 맡긴 국민들로선 참 허탈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이 괴리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최선을 다했다”는 그의 말을 믿지만, 그게 누구를 위한 최선이었는지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본인을 그 자리에 앉혀준 임명권자에 대한 최선인지, 본인 스스로를 위한 최선인지,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인지. 이건, 후임 부총리로 지명된 유 후보자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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