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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호 "나는 세상 이야기 투영하는 먹지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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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호 "나는 세상 이야기 투영하는 먹지같은 사람"

입력
2015.12.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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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호의 '투명한 그물'은 목적 없이 오르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커먼센터 제공
노상호의 '투명한 그물'은 목적 없이 오르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커먼센터 제공

밴드 혁오의 앨범 표지를 그린 미술작가 노상호(29)가 작품집‘데일리 픽션(미메시스)’을 냈다. 작가가 하루에 한 장씩 그려낸 그림과 그 그림에 맞추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야기 장인이 되고 싶었기에 그림과 이야기를 함께 짓는 작업을 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쌓였다”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단편을 만들고 싶어 데일리 픽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데일리 픽션’에 실린 그림 한 편을 완성하고 글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에서 5분 남짓. 이야기 소재는 주로 자기 세대 사람들과 대화하며 얻는다. 때문에 책 전반부는 청춘의 사랑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우리의 연애는 심각하지도 절절하지도 않은 사랑이야”라는 책의 첫 문구처럼 그가 그리는 이 시대의 사랑은 소소하고 냉정하다.

그런데 책 후반부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목적 없이 위로 올라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투명한 그물’을 비롯해 뒷맛 쓴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인간의 악마성을 표현한 우라사와 나오키의 미스터리 스릴러 만화 ‘몬스터’를 즐겨 읽었다는 노상호는 그 영향을 받아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다루는 동시에 그와 같은 청춘세대의 불안을 자연스레 반영하고 있다.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는 세월호 사건 직후 수집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노상호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몰랐던 사람들의 두려움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는 세월호 사건 직후 수집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노상호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몰랐던 사람들의 두려움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노상호의 그림은 가볍다. 뒤가 비치는 먹지를 사진에 대고 테두리만 딴 후 수채물감으로 색을 넣는다. 이 방식으로 지난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미술장터 ‘굿-즈’에서만 같은 그림을 수백 장씩 그려 팔았다. 노상호는 “내 그림이 복제되거나 훼손된다는 사실에 별로 두려움이 없다. 스캔해서 이미지 파일로 갖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다른 미술작가들이 들으면 황당해할 이야기겠지만 그의 작가론은 확고하다. “저는 작가라기보다 세상의 이야기를 투영하는 먹지 같은 사람이라 생각해요. 저라는 먹지가 세상의 이미지를 받아들여서 만들고,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는 거죠.”

그래도 양보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창성은 무엇일까. “여러 개의 이야기가 모이면 오리지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가 작업한 밴드 혁오의 앨범 표지가 그렇다. 혁오 밴드가 뜨기 전부터 표지를 작업해온 노상호는 “혁오가 내는 앨범 각각의 표지가 하나로 이어지면 하나의 그림이 되도록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혁오의 앨범 전집을 모으면, 이 밴드의 음악적 여정을 표현하는 노상호의 작품이 완성되는 셈이다. 하루하루 수집한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노상호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자신의 그림으로 이 세계 전체를 그려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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