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tiveria. 이탈리아 말이다. 축구를 좋아하다가 알게 됐다. 시오노 나나미가 이탈리아 선수들을 언급하면서 쓴 단어다. 일본말로는 ‘악의’ 정도로 해석된다나. 그 맥락이라면 한국 사람들이 흔히 쓰는 ‘투혼’ ‘깡다구’ 등이랑 비슷하다. 그렇게 투박한 뜻만은 아니다. 그것들까지 포함해, 그보다 더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단어라 이해한다. 감성, 기술, 열정, 이성, 냉담 등이 다 이 단어를 구성하는 요소다. 이를테면 ‘궁극의 정신력’이랄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개인의 잠재 능력이자 어떤 집단의 요구를 완전체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자에게 하사되는 단어다. 2002년 월드컵 때 황선홍과 안정환을 보면서 이 단어를 떠올린 적 있다. 개인의 자기 구성력, 자기 투신 밀도, 그리고 내밀한 자기반성까지 거기 다 속한다. 박지성이 유럽 무대에서 어필할 수 있었던 근원도 히딩크나 퍼거슨이 그의 카티베리아를 적시했던 결과라 생각한다. 무턱대고 성실하거나 살신성인하는 것만도 아니다. 자신만의 창조성을 중심축으로 자기 능력 바깥까지 자기 안으로 수렴하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자체를 드라마로 꾸밀 줄 아는 능력이랄까. 아니, 꾸민다는 말과도 다르다. 그저 그 자신으로 살면서 자신의 궁극으로 타인까지 행복케 하는 ‘쌩얼’(?)의 사랑이라고나 하자. 절대적인 자기애가 타인까지 끌어 안는 순연한 덕. 어감조차 음악적이지 않나. 카티베리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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