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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로봇을 만드는 사람들

입력
2015.12.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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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충동 아트센터나비 타작마당에서 열리는 ‘로봇 파티’에서 박은찬의 ‘드링키’가 술잔을 들고 관객과 건배하고 있다. 아트센터나비 제공
서울 장충동 아트센터나비 타작마당에서 열리는 ‘로봇 파티’에서 박은찬의 ‘드링키’가 술잔을 들고 관객과 건배하고 있다. 아트센터나비 제공

17일 서울 장충동 주택가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 분관 타작마당에 다양한 로봇들이 등장했다. 내년 1월 16일까지 열리는 ‘로봇 파티’전의 최고 인기 로봇은 키가 30㎝ 남짓한 하얀 로봇 ‘드링키’다. ‘드링키’는 소주잔을 들고 술을 따라달라며 관객들에게 손짓을 한다. 소주를 따라주면 원샷을 한 후 얼굴을 잠시 붉게 물들이다가, 다시 다음 잔을 요구한다. 그렇게 마신 술이 30잔을 넘어가면 술을 바닥에 흘려 버리기도 하고, 괴이한 춤을 추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드링키’의 제작자인 박은찬은 대학교 때 로봇을 전공해 인간형 로봇을 제작했던 경험이 있지만 지금은 로봇과 무관한 일을 한다. 그는 일하고 남는 시간에 자신만을 위한 로봇을 만들었다. ‘드링키’를 만든 계기도 개인적이었다. “3년 전 크리스마스에 홀로 삼겹살에 소주를 하러 갔어요. 홀로 마시는 소주가 너무 쓰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제 앞 자리에 소주 한 잔을 더 놓은 후, 술을 따르고 건배를 한 후 마셨더니, 맛이 달라지더라고요. ‘함께 술을 마신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로봇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박은찬은 아내이자 동료 창작자인 박채아와 함께 ‘드링키’를 프로그래밍했는데, 프로그램을 다룰 줄만 안다면 쉽게 나만의 로봇을 만들 수 있다. 본래 ‘드링키’가 만취하는 시점은 작가 자신의 주량과 일치하는 소주 7잔이었는데 전시장에서 너무 많은 손님이 술을 주는 바람에 30잔으로 바꾸었다. 로봇 재료도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지 않다. 박은찬은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로봇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며 “전 제작과정을 블로그에 공개할 예정”이라 말했다.

이처럼 타작마당에 모인 한ㆍ중ㆍ일 로봇 창작자들은 첨단 기능보다는 개인이 조립 가능한 로봇 개발을 추구하는 ‘창작자 운동(메이커 무브먼트)’의 일원이다. 로봇 밴드 ‘엠엠아이(MMI)’로 이미 전세계 로봇 창작자의 스타로 떠오른 그룹 타스코, 아마존사의 인공지능 플랫폼 알렉사를 이용해 사람과 대화하며 움직이는 붉은 여우 모양의 로봇을 제작한 오진환 등이 쉽게 만드는 로봇을 추구한다.

로봇 창작자 오진환(가운데)과 전창훈(왼쪽)이 16일부터 18일까지 열린 해카톤에서 인간과 의사소통하는 로봇 ‘루미나’를 제작하고 있다. 해카톤은 창작자들이 서로의 기술과 상상력을 공유하는 제작 축제다. 아트센터나비 제공
로봇 창작자 오진환(가운데)과 전창훈(왼쪽)이 16일부터 18일까지 열린 해카톤에서 인간과 의사소통하는 로봇 ‘루미나’를 제작하고 있다. 해카톤은 창작자들이 서로의 기술과 상상력을 공유하는 제작 축제다. 아트센터나비 제공

창작자 운동의 시발점은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세계 최초의 ‘메이커 페어’다. 한국에서도 이를 본따 2012년 ‘메이커 페어 서울’이 시작됐고, 2013년에는 공공에 공개된 공방 ‘팹 랩(패브리케이션 래버래토리) 서울’이 세운상가에 설립됐다. 올해 문을 연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ㆍ제작센터 역시 예술가들을 위한 공개 공방이다.

귀농ㆍ귀촌 예술가와 기술자들이 주축이 된 적정기술운동을 창작자 운동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이들은 집 짓는 법, 난로 개발법, 공예품 제작 방법 등을 온라인에 공유하고 만든 물건을 거래하는 대안장터를 연다. 김성원 적정기술활동가는 “적정기술이 친환경기술로만 주목을 받고 있지만 핵심은 (소비자가 제작자가 되는) 재기능화”라며 “스스로 만드는 경험을 쌓고, 이를 통해 활기찬 제작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로봇 파티’에 등장한 로봇들의 기능은 완벽하지 않다. 전시 기간에 로봇은 수시로 망가지고 작가들이 전시장으로 달려와 손을 봤다. 하지만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은 “이 어설픔이 우리의 자랑”이라고 말한다. 발전속도는 느리더라도, 자신에 맞는 물건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창작자 운동의 의미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업을 ‘행복물건’이라 칭하는 박은찬은 “더 많은 사람들이 ‘나도 만들어볼까?’하는 생각을 갖고 작품 만들기에 나서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행복물건’이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상황이 궁극적인 희망”이라고 말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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