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미군들이 “그랜드 마스터”라고 깍듯이 존중하는 한국인이 있다. 34년째 서울 용산과 경기 동두천 미군기지 등에서 태권도를 지도하는 김문옥(54) 주한미군태권도사범단 단장이다.
그가 지금까지 가르친 미군 제자만 25만명에 달한다. 김 단장은 2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태권도를 배우면 미국에 돌아가서도 열렬한 태권도 지지자가 된다”며 “태권도야말로 미군과 교감할 수 있는 우리 문화”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에 태권도를 처음 접한 김 단장은 공인 8단의 고수다. 고3이었던 1978년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주한미군 지도가 평생의 업이 됐다. 제자로 만난 미군들 중 그를 따라 태권도의 길을 걷는 이들도 상당수다.
미국 LA 토렌스 등의 태권도장 2곳도 그렇다. 동두천에서 가르친 미군 대위가 1986년에 캘리포니아 경찰학교로 김 단장을 초청했다. 그곳에서 태권도를 지도한 뒤 아예 도장을 열었다. 지금도 1년에 4, 5차례 건너가 직접 지도를 한다. 김 단장은 “그 대위가 지금은 7단이 돼 미국 도장을 맡고 있다”며 “50살에 태권도를 시작한 자동차 회사 체로키 부사장 출신 제자는 올해 80세의 고령인데도 미국 교회에서 태권도를 지도한다”고 했다.
3년 전에는 경기 동두천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허난성(河南省) 싼먼샤(三門峽)에도 도장을 열었다. 인구가 약 220만명이지만 한국인은 한 명도 없던 도시다. 김 단장은 “싼먼샤의 대학생 2만2,000여명이 교양과목으로 태권도를 이수한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유명한 소림사에서 바로 옆 도시에 있었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30명으로 이뤄진 사범단을 이끄는 지금도 매일 새벽 미군기지로 나가 자신이 창안한 ‘전투 태권도’를 가르친다. 12동작만 배우면 어떤 상황에서도 쓸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한다. 전투 태권도 역시 구령은 모두 한국어다. 그는 “미국에서는 연 회비 1,800~2,000달러를 한번에 내야 해 웬만한 가정이 아니면 태권도 배우기가 쉽지 않다”며 “미군은 체력이 검증된 자원들이라 실력이 쑥쑥 느는데다 공짜로 가르쳐주니까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미국 의회가 복지 예산을 줄이기 전까지 주한미군 시범단을 구성해 미 의사당과 국방부를 비롯해 연 60회 이상 국내외에 태권도를 전파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체육공로상을 비롯해 미국에서만 20여 개의 상을 받았다고 한다.
요즘 그가 관심을 쏟는 쪽은 다문화다. 미군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다문화 시대에도 태권도가 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권도는 기자재가 필요 없고 사범 한 명이 수백 명을 지도할 수 있어 비용이 적게 든다. 그가 앞장 서 주한외국인다문화태권도 협회를 만들었고, 올해 처음 국기원 예산으로 전국 211개 다문화센터 중 10곳에서 태권도 교육이 시작됐다.
김 단장은 최근 인천 남동공단의 태권도 교육장에서 깜짝 놀랄 광경을 봤다. 사범들이 잘 하나 확인하러 갔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련하는 외국인 노동자 80여 명과 마주한 것이다. 김 단장은 “그들의 열정이 너무 고마워 바로 돌아 나와 음료를 사 들고 다시 갔다”고 말했다. 그에게 태권도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한류’다. “외국인도 김치나 불고기처럼 한번씩은 태권도를 들어봤고 다들 배우고 싶어한다. 태권도를 통해 그들이 우리 문화와 정서 속으로 들어오는 길을 열어주고 싶다.”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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