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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사냥했으면 차라리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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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사냥했으면 차라리 먹어라!

입력
2015.12.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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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미국인 치과의사가 잔혹하게 도륙한 짐바브웨 국민사자 '세실'. 세계적으로 비난이 일어난 가운데 미국은 최근 사냥한 사자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기로 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미국인 치과의사가 잔혹하게 도륙한 짐바브웨 국민사자 '세실'. 세계적으로 비난이 일어난 가운데 미국은 최근 사냥한 사자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기로 했다. AP=연합뉴스

한 해가 지나간다. 동물에게는 해가 바뀐다는 게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동물 문제에 관심 있는 세계인에게 올해는 짐바브웨의 사자 세실을 잃은 해로 기억될 것이다. 멋진 갈기와 당당한 모습으로 짐바브웨의 국립공원을 찾는 관광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사자 세실은 원정 사냥을 온 미국인에게 살해된 후 가죽이 벗겨지고 머리를 잘린 채 버려졌다. 사랑받던 야생동물이 도륙, 참수된 참혹한 모습에 경악했고 과연 이런 사냥이 맞는지 의아했다.

세실을 살해한 치과의사인 월터 파머가 한 것은 트로피사냥이다. 트로피사냥은 사냥 후 동물의 사체 전체나 가죽, 뿔, 머리 등을 박제하여 기념품으로 보관, 전시하려는 사냥의 종류이다. 거실 벽에 거대 뿔을 가진 사슴의 머리를 걸거나 바닥에 머리가 달린 사자나 호랑이 가죽을 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취미생활이다. 그런데 먹고 살기 위한 것도 아닌 트로피 사냥을 사냥이라고 불러야 할까.

게다가 이 취미생활을 합법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항공료, 숙박, 사냥허가권, 가이드, 박제, 운송 등을 합하면 거의 1억 원에 달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일반인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각 나라 부자들의 호사스런 취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식민제국에 수탈당하던 아프리카의 동물들이 이제는 미국 등 부자나라 부호들의 유흥거리가 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원정 사냥을 사냥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가이드가 미끼를 이용해서 유인한 야생동물을 너무 쉽게 죽이기 때문이다. 포식자인 대형 고양이과 동물들은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온 에너지를 소진한다. 또한 어리거나 병으로 약해진 대상을 주로 사냥 목표로 삼는다. 그래야 사냥 성공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트로피 사냥꾼들은 건장한 대형 포유동물을 너무 쉽게 사냥하고, 특히 수컷 사자를 좋아한다. 크고 잘 생긴 사냥감일수록 힘과 권력을 과시하기 좋기 때문이다. 세실 또한 열세 살의 전성기 수사자였으니 월터는 사냥 후 인증사진을 찍으며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게다가 트로피 사냥꾼들은 수집가 기질이 있어서 사자, 코끼리, 기린 등 대형 포유류를 골고루 수집해서 장식하기를 좋아한다.

물론 짐바브웨를 비롯한 남아프리카에서는 농장에서 길러진 야생동물을 데려다가 사냥하기도 하니 그보다는 사냥에 가까울 수도 있다. 적어도 이곳의 사자들은 도망이라도 가니 말이다. 농장에서 사냥용으로 길러진 사자들은 사냥꾼을 봐도 도망가지 않고 밥을 주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 있거나 밥을 달라고 다가오다가 총을 맞고 죽는다. 사냥이라기보다 치사하고 더러운 취미 생활이라고 불러야 적합하다.

그래서 동물단체는 사냥을 했으면 권력 과시용으로 장식하지 말고 차라리 먹으라고 권고한다. 그게 사냥꾼의 최소한의 윤리이며 사냥의 전통 규율이기 때문이다. 식탁에 올릴 것을 위한 사냥은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사냥은 먹고 살기 위한 행위와 멀어졌다. 18세기 영국 권력자들은 사냥을 통해 얻은 모피와 야생동물의 머리로 집을 장식했고, 코끼리 다리를 우산꽂이로 썼다.

사냥의 목적은 이미 생존이 아닌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으로 변화했고 그 무엇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다르다. 그 무엇이 권력, 남성성, 지위가 되는 순간 그것은 사냥이라고 할 수 없다. 플라톤도 말과 개, 사냥꾼의 네 발로 사냥하는 것만을 사냥으로 인정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사냥의 윤리이다.

책공장더불어 김보경 대표

참고한 책: 오리온의 후예, 찰스 버그먼,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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