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형법 소요죄의 원형은 일본 메이지 시대 1882년에 시행된 구 형법의 흉도취중죄(兇徒聚衆罪)다. 후자는 문자 그대로 ‘흉악한 도당이 무리를 짓는 죄’란 뜻이다. 봉건 체제로부터 다소간에 타협적으로 탄생한 일본 메이지 정부는 근대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자유민권운동을 진압할 목적으로 이 조항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조항은 1907년에 제정된 형법에서 소요죄로, 다시 1995년의 개정에서 소란죄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5년 일본의 형법 개정은 전체적으로 법률 용어나 문장을 일상적으로 쉽게 이해되게끔 바꾸려는 취지에서 이루어졌다. 오늘날 일본 형법에서는 106조에 소란죄가, 107조에 다중불해산죄가 있는데, 이는 한국 형법 115조 소요죄와 116조 다중불해산죄에 그대로 대응한다.
한일 간에 이 두 조항들의 내용은 거의 같다. 다만, 소란죄의 경우, 주모자, 지휘자 및 적극 가담자, 부화뇌동한 사람을 구분하여 처벌의 내용 및 수준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다중불해산죄의 경우, 한일 모두 권한 있는 공무원이 3회 이상의 해산 명령을 내린 후 해산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한마디로, 소요죄는 메이지 시대 이래 일본 형법을 계속해서 베낌으로써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한일의 형법 체계상, 소요죄나 소란죄는 내란이나 국가 전복에는 이르지 않은 수준의 소위 폭동을 처벌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여겨진다. 미국의 연방 법전의 경우, 18편은 우리의 형법 및 형사소송법에 상응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102조는 폭동(riot)을, 115조는 반역, 선동 및 전복적 활동(treason, sedition, and subversive activities)을 다룬다. 미국의 각 주는 집회에 관한 법률을 각기 따로 갖고 있다. 독일의 연방 형법에도 소요죄(Landfriedensbruch)가 들어 있다. 이것은 직역하면 ‘국가 평온을 깨뜨리는 일’이란 뜻인데 이것 역시 소위 폭동에 관한 조항이다.
고전 중국어에서 소요(騷擾)는 소란 및 요란과 거의 동의어로 쓰였다. 오늘날 한국어에서 일상적으로 ‘소란’과 ‘요란’이 보통과는 다르게 시끄럽고 어수선한 상태를 비교적 중립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근대 이전 체제의 집권층에서 보자면 소란이나 요란은 그 단어들의 뒷글자 성분이 나타내듯이 결국 일종의 ‘난(亂)’이었던 것이다.
영어권에서 요즘 잘 쓰지 않는 단어로 ‘commotion’이 있다. 소란, 소동 등의 의미인데, 철학자 존 로크의 시기까지는 자주 쓴 것으로 보인다. 로크는 그의 유명한 ‘관용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을 모아서 선동적 폭동(seditious commotion)을 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압제다.” 지배층에서 폭동으로 몰아가는 것은 대개가 압제에 대한 저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결하게 잘 표현했다. ‘commotion’의 어원상 뜻은 ‘함께 움직임’이다.
최근 경찰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소요죄를 적용해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소요죄가 적용된 것은 거의 30년만이다. 백남기씨를 의식불명 상태로 만든 물대포 남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 경찰의 의도는 평범한 집회를 폭동으로 둔갑시킴으로써 경찰이 범한 치명적 과잉 진압을 무마해 보려는 것이다.
국민들의 집회를 폭동으로 처벌하겠다는 발상은 무엇보다 비례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한국 형법의 소요죄가 역사적, 법체계적, 비교법학적으로 보아서 폭동죄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경찰의 행태는 흉악하게까지 보인다.
경찰의 이런 모습은 마치 경찰이 그 동안 그토록 원하던 수사권을 얻어낸 것처럼으로도 보인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입에 거품을 물며 반대했던 검찰이 지금 잠잠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만약, 검찰이 경찰을 따라서 평범한 집회를 폭동으로 기소한다면, 검찰과 경찰은 무리 지어 민주주의와 기본권을 폭행하고 협박하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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