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칠레 4개국은 스페인어로 ‘코노수르(Cono Sur)’지역이라 불린다. 원뿔(Cono)처럼 생긴 대륙의 남쪽(Sur) 국가라는 의미다. 파라과이와 브라질 남부를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이들 코노수르 국가는 물리적 위치뿐 아니라 피식민ㆍ독재의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며 정치ㆍ경제ㆍ문화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이고, 또 상대적으로 번영한 나라들이어서 95년 1월 1일 ‘메르 코노수르’협정을 체결, 유럽공동시장(EEC)에 대항하는 역내자유시장협정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강고한 연대가 이뤄진 것은 아무래도 독재시절 정적 제거 연합전선에 임할 때였다.
남미의 우파 정권들이 역내 좌파 혁명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이른바 ‘콘도르 작전’을 공식적으로 시작한 것은 1975년 11월 25일이었다. 저들 국가의 군사첩보기관은 70년대 초부터 공산 반군을 척결하기 위해 긴밀한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국경을 통해 유입되는 혁명세력과 혁명 기운을 각국이 개별적으로 막기에는 한계가 있어서였다.
코노수르는 그러니까, 치열한 냉전 속에서 쿠바를 거점으로 세력을 확산하려는 소련의 대외정책과 미국의 반공정책이 격돌한 거대한 전장이었고, 콘도르 작전은 우파에 의한 대대적인 좌파 척결 전쟁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1976~83년), 칠레 피노체트 정권의 ‘콜롬보 작전’을 비롯한 대대적인 학살극이 국가별로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자행됐다. 수많은 이들이 실종되고 투옥되고 고문 당하고 살해 당했다. 90년대 들어 냉전이 종식되고 각국이 민주화하면서 피해 규모에 대한 설들이 분분했지만 그야말로 설이었고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건 빙산의 일각이었다.
1992년 오늘(12월 22일) 파라과이의 판사 호세 페르난데스(Jose Fernandez)가 마틴 알메이다(Martin Almada)라는 인권운동가와 함께 수도 아순시온의 교외 한 경찰서에 대한 구금 기록 압수수색을 벌이던 중 방대한 서류 뭉치를 발견했다. 콘도르 작전을 전후한 주변국 군과 정보기관, 비밀경찰의 협력 사례와 법원 명령을 무시한 체포자 교환 등 인권 침해 사례들이 기록된 문서였다.
훗날 ‘공포의 문서(Terror Archives)’로 불리게 되는 그 자료를 통해 ‘콘도르 작전’의 진상과 규모의 대강이 드러났다. 코노수르 국가뿐 아니라 콜롬비아 페루 베네수엘라도 직ㆍ간접적으로 작전에 개입했다는 정황, 피살자만 최소 5만 명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기록들은 칠레 피노체트 사후 군부 등에 대한 재판 증거자료로도 활용됐다. 콘도르 작전은 아르헨티나 페론 군사정권이 무너지면서 종료됐다.
2009년 유네스코는 ‘테러 아카이브’를 인류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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