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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들 목요일 밤 하모니 "성악가 부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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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들 목요일 밤 하모니 "성악가 부럽지 않아"

입력
2015.1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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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저녁 라루체합창단 단원들이 연말 정기공연을 앞두고 김준한 지휘자의 지휘 맞춰 최종 연습을 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17일 저녁 라루체합창단 단원들이 연말 정기공연을 앞두고 김준한 지휘자의 지휘 맞춰 최종 연습을 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너무 파인 거 아니야?” “어깨에 숄 두를 거니까 괜찮아.”

17일 인천 남동구 한국산업단지공단 인천지역본부 중회의실. 중년 여성 수십 명이 ‘등 파인 드레스’를 받아들고 들뜬 표정을 짓는다. “연주회 때 귀걸이 됩니다. 단 귓불 밑으로 떨어지는 큰 귀걸이는 안 됩니다.” 이들의 동생쯤 돼 보이는 한 남자가 드레스를 나눠주며 외친다.

공장 밀집지역으로 대낮에도 인적이 드문 이곳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면 노랫소리로 분위기가 딴판이 된다. 산업단지 근로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라루체합창단 단원들이다. 공단 근로자는 물론 인근 주민과 소문 듣고 찾아온 타 지역 근로자까지 30여명이 활동하는데, 재작년 산업단지 페스티벌에 참가해 1위를 차지했을 만큼 남다른 팀워크를 자랑한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문화예술 커뮤니티 지원사업으로 2011년 창단한 이 합창단은 이듬해 지휘자 김준한(42)씨가 합류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김씨는 전문예술단체 문화뱅크 소속의 프로 음악가다. 합창단은 매년 연말 정기연주회를 갖는데, 입단 1~5년 차인 단원 중 실력과 상관없이 지원자에게 솔로 파트를 맡기는 전통을 자랑한다.

이날 여성단원들이 받아 든 ‘등 파인 드레스’는 19일 열린 정기연주회용 의상. 공연에서 22명의 여성단원은 드레스, 6명의 남성단원들은 턱시도를 입었다.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돌입한 17일, 김 지휘자는 ‘가고파’를 지휘하다 “반 박자 늦어지는 걸 주의하시라”고 주의를 주고 대중가요 메들리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단원들이 서 있는 위치를 바꾼다. “성철씨가 맨 뒷줄 중간으로 오세요. ‘뽕삘’이 있어서 성철씨 소리가 큰 게 좋아요.”

오후 6시 반 남성단원들의 특별 과외로 시작한 연습은 밤 11시까지 이어진다. 2012년부터 합창단에 합류, 그 해 정기연주회에서 독주곡을 불렀던 중학교 교사 배은희(54)씨는 “당시 교사 연수에서 ‘목표세우기’란 단원이 있어 ‘성악가처럼 노래 부르기’를 목표로 삼고 가입했다. 지휘자가 방과 후 학교 음악실로 찾아와 별도 지도를 했을 만큼 열성적이다”고 말했다. 김 지휘자는 “프로 합창단처럼 연주회 티켓을 파는 것이 아니라 단원들의 꿈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단원들에서 최고의 소리를 뽑아내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공공 문화예술교육은 주민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2013년 중앙대 행정대학원 김태순이 서울 구로구 자치회관 문화예술 프로그램 이용자 302명을 심층분석한 논문 ‘자치회관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주민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자치회관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주민의) 주관적 삶의 질에 유의미한 영향력이 있으며 프로그램 만족도가 높을수록 삶의 질도 높아진다”고 밝혔다. 논문은 “수익이 발생하지 않고 수강생의 수가 적다고 해서 폐지나 축소에 급급하기보다는 문화예술과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해 주민 스스로 해결 능력을 키워주고 주민자치기능강화와 지역 공동체 형성을 도모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11년부터 국가산업단지 입주기업과 중소기업 CEO, 근로자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근로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2015년 현재 39개 프로그램, 7억 1,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지난 5년간 3,000명에 달하는 산업단지공단 근로자들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며 “내년에는 지원규모를 확대해 총 55개 프로그램을 선정, 지원 대상과 프로그램을 다각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천=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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