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식당서 들은 이야기 계기로
비밀 입양 둘러싼 심리 파고들어
20개 넘는 국제영화제서 초청
“한국 촬영, 어려웠지만 즐거웠다”
“한국영화라고 생각해서 한국에서 찍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찍는 게 좋지 않겠냐는 조언도 있었지만 이전까지 캐나다에서 찍은 것과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캐나다 동포 2세인 앨버트 신(31) 감독은 17일 국내 개봉한 자신의 두 번째 영화 ‘인 허 플레이스(In Her Place)’를 한국에서 찍은 이유에 대해 “산이 높을수록 도전하는 즐거움이 크다”며 이렇게 말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나고 자라 요크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그는 2009년 ‘포인트 트래버스(Point Traverse)’로 데뷔했다. ‘인 허 플레이스’는 그가 3년여간 시나리오를 쓴 끝에 2년 전 단신으로 한국에 와서 찍은 영화다.
이 작품은 뜻하지 않게 임신하게 된 10대 소녀(안지혜)와 아이를 입양 보내려 하는 어머니(길해연), 불임으로 고생하다 아이를 몰래 입양하려 하는 중년여성(윤다경)의 복잡한 심리를 그린다.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 산세바스찬국제영화제, 데살로니카국제영화제 등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20개가 넘는 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아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4일 폐막한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에 맞춰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이날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몇 년 전 친척집이 있는 안양의 한 식당에서 우연히 들은 한 가족의 이야기가 이 영화를 만든 계기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임신을 하지 못했던 여성이 임신했다는 소식만 전하고 명절이 되도 나타나지 않으니 가족들이 못 믿겠다며 크게 소리치는 걸 들었어요. 그때 토론토 한인 커뮤니티에서 들었던 이야기도 떠올랐죠. 워낙 작은 사회라서 ‘누구 아이가 친자식이 아니더라’ 하는 식의 소문이 많거든요. 알아 보니 한국에는 아직도 비밀 입양이 있다더군요.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 감독은 입양 자체에 관심을 두기보다 비밀 입양을 둘러싼 세 여자의 심리 변화를 파고든다. 제목은 ‘그녀의 집에서’나 ‘그녀를 대신해서’라는 뜻도 있지만 ‘그녀의 시점에서’라는 의미도 담았다. 그는 “흑백으로 명확히 나눌 수 있는 영화보다 회색 같은 영화가 좋다”며 “엄마가 된다는 것, 한국 사회의 세대 간 사고 방식 차이, 소유의 문제, 행동의 동기가 사회적 강박인지 주체적 의지인지 등 여러 가지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자 형제도 아이도 없는 신 감독은 캐나다에 있는 친구와 한국에서 시나리오를 쓸 때 만나 영화 촬영 후 결혼까지 하게 된 미국인 아내 등 주위 여성들의 조언을 얻어 어렵사리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열 살 무렵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감독을 꿈꾸었다는 그는 어려서부터 집에서만큼은 철저하게 한국식 교육을 받아 “반쪽은 한국인”이라며 “나의 그 절반을 영화에도 반영해보고 싶어서 한국 촬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어려서 가끔 한국에 올 때마다 머물렀던 작은아버지의 경기 안양 농장 풍경도 이 영화를 찍은 직접적인 동기 중 하나다. “캐나다 농장에서도 찍을 수 있지만 꼭 그 농장에서 찍고 싶었습니다. 한국어도 서투르고 배우, 스태프 모두 처음 만난 사람들에다 영화 제작 시스템도 달라 어려웠지만 즐겁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대학 친구와 영화제작사를 차려 그 동안 벌었던 돈을 이 영화 제작에 모두 쏟아 부었다. 이 영화가“캐나다 흥행 수입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어 다행”이라는 그는 차기작으로 캐나다의 한 중견 제작사와 미스터리 영화를 준비 중이다. “(대만 출신으로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리안 감독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리안 감독처럼 독립영화부터 큰 상업영화까지, 코미디에서 호러까지 나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