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가운데 폭탄, 무장총기공격과 함께 가장 오래되고 빈번히 나타나는 유형이 인질납치다. 지난달 20일 서아프리카 말리 수도 바마코의 고급 호텔에서 27명이 사망했던 테러 역시 전형적 인질납치테러였다. 사건 발생 직후 갑작스럽게 한 방송사의 전화 인터뷰 연결을 받고 필자는 납치 사건에 대한 분석과 예측을 제공해야 했다. 거의 알려 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전문적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이런 경우는 상당히 난감하다. 그럼에도 인질사건에 대한 일반적 지식과 과거 사례에 대한 분석 경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건의 추이와 성격 그리고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말리 인질극은 빠른 특공대 투입 필요했던 상황
이와 같은 대형 인질극 사건 초기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질범이 협상을 할 의지와 동기가 있는가’이다. 대체로 인질범들은 협상을 통해 요구조건을 관철할 것인지, 아니면 인질 살해나 어떤 극적인 효과 연출이라는 테러 자체가 목적인지에 관한 분명한 의도를 갖는다. 때문에 사건 초기 단계에 인질테러에 대응하는 정부 당국은 사건의 성격과 인질범의 의도를 빠르게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방안을 선택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는 전형적인 거래 상황이므로 인질의 생명은 대체로 안전한 편이며 협상전략을 통해 사건의 해결을 유도하는 편이 좋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인질의 생명이 매우 위험한 상황이며 인질범들은 극적 효과연출과 선전선동, 또는 인질 자체의 살해 목적과 같은 다른 비거래적 의도를 가지므로 가급적 신속히 특공대를 투입하여 인질 구출작전을 진행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
말리 사건의 경우 인질극 초기에 80여명 정도를 풀어주었다는 점은 외견상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이 풀려 난 인질들이 무슬림들로 확인되었다는 사실은 남아있는 비무슬림 인질들이 살해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2013년 9월 케냐 나이로비 쇼핑몰 테러 당시 테러범들이 무슬림인지 여부를 파악한 뒤 비무슬림 만을 선별적으로 살해했던 사실은 이러한 추정을 강화하는 단서가 된다. 또한 말리 바마코 인질범들이 인질납치 이후 뚜렷한 요구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고, 과격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극적인 파리테러를 연출한 직후에 알 카에다 계열인 알 무라비툰이 주도했다는 점은 협상을 통한 거래 보다는 인질대치와 대규모 살상이라는 극적 효과가 주목적일 것이라는 추정에 무게가 실리게 한다. 때문에 이 경우는 신속한 특공대 투입을 통한 인질구출 작전이 진행되어야 하는 상황에 속한다. 실제 미국 프랑스 말리 특수부대가 신속히 인질구출작전을 전개했으며 이는 합리적인 결정이라 볼 수 있다.
고위급 대응본부의 일선 지휘는 금물
인질납치테러 사건은 분명히 합리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독특한 자체 역동성을 가진다. 이 글에서는 간략하게나마 인질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특성을 제시하고 설명하고자 한다. 인질납치테러 사건은 상황전개의 특성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통상 ‘호스티지 테이킹’이라 불리는 봉쇄된 인질납치 유형이다. 이 경우는 인질 납치범과 인질이 경찰이나, 군 등의 정부 병력에 의해 포위되어 있으며 인질의 목숨을 담보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유형은 ‘키드내핑’이라고 불리는 봉쇄되지 않은 인질납치이다. 이 경우 인질범은 인질을 납치해 어디론가 사라지는 상황이 전개된다. 군과 경찰 등 정부와 피해자 가족은 인질범과 인질의 소재를 알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인질범이 봉쇄된 상황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정부가 대응하기 훨씬 유리하다. 이번 말리 테러 사건의 경우는 전형적인 봉쇄된 인질테러 사건에 해당했다.
봉쇄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의 역동성은 다르다. 사건 대응에 있어 이러한 점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봉쇄된 인질테러 상황에서는 사건 발생 최초 45분에서 1시간 정도가 매우 중요한 시간대이다. 최초 인질납치 상황에서의 사상자를 제외하고 이 시간대에 인질살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협상을 통한 평화적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면 인질이 살해되거나 요구조건이 분명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경우, 혹은 요구조건 자체가 없다면 인질의 추가 살해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반면 인질범과 인질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봉쇄되지 않은 인질납치의 경우 최초 3일이 중요한 시간대이며 이 기간 중 인질이 살해되지 않거나 구체적인 요구조건이 제시될 경우 협상을 통한 해결의 여지가 커지고 반대의 경우는 인질의 살해 가능성이 확대된다.
일단 인질사건 발생 시 현장에 인질테러 전문가와 인질협상 전문가가 즉시 파견되어 가급적 최일선 실무 책임자로서 전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현지 상황대응을 수행해야 한다. 현장과 동떨어진 상위의 대책본부나 경찰청, 총리실, 또는 대통령실 등 고위급 대응본부는 절대로 협상이나 사건 대응을 지휘해서는 안되며 현지 실무 대응팀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전체 사건을 뒤에서 가급적 조용히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샘물교회 인질사건 당시 고위급 대응본부가 직접 전면에 나서면서 사건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고 이후 대응에 있어 심각한 문제와 장애들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시 현장에 인질협상과 테러와 범죄 상황에 대한 전문가를 직접 파견하는 것은 사건에 대한 초기 장악과 전반적인 대응과정에서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 된다. 인질협상의 전반적인 지휘와 대응을 인질협상 전문가가 담당하고 기타 심리분석, 언어분석, 행동분석, 전술공격 등의 관련 전문가가 협력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과도한 미디어노출은 위험할 수도
인질테러 상황이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는 여러 징후들을 통해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질범이 과거 폭력사용이나 약물남용의 경력이 있거나 지나치게 많은 무기를 소지하거나 인질의 눈을 가리거나 인질을 잔인하게 학대하거나, 아니면 인질의 몸에 무기를 묶거나 하는 등의 징후들은 사건이 폭력적인 결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또 인질범이 욕설을 많이 섞어 얘기하거나 흥분되고 격앙된 감정이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거나 지나치게 일관되게 차분한 경우에도 위험 징후들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인질범의 말 속도가 느려지거나 욕설이 잦아들거나 또는 인질 살해 협박이 줄어들거나 감정이 가라앉는 등 현상이 나타난다면 이는 사건이 평화적으로 종결될 수 있다는 징후들에 해당한다. 인질 일부를 풀어주거나 이전 폭력 사용 경험이 없거나 인질협상 담당자와 지속적인 협상을 이어가거나 어떤 구체적인 요구조건을 제안하거나 먼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 온다면 이 역시 평화적 해결을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표식이다. 이러한 사항들은 전문가에 의해 종합적으로 고려돼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질사건 대응팀의 전문성과 협력, 공조는 사건의 긍정적 해결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먼저 협상의 경우 인질의 가족이나 애인, 지인 등이 직접 수행해서는 안 되며 인질과 감정적으로 분리돼 있는 제3자인 전문 협상가가 협상을 주도해야 한다. 이 때 협상가와 협상위원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책집행자 또는 의사결정자여서는 안 된다. 전술 공격팀으로는 전문적 인질구출 훈련을 거친 주체만이 작전에 투입돼야 한다. 협상팀과 전술공격팀, 그리고 저격팀이 긴밀한 공조와 협력을 통해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들 모두를 조율할 수 있는 지휘부가 구성되어야 한다. 인질사건 대응과정이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공식적 외교 채널을 통해 국제기구나 제3국 정부, 저명한 민간단체나 인사 등에 협조를 구하는 것도 무의미하거나 때때로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 경우 인질사건 자체의 정치적 비중이 갑자기 급상승하여 인질 몸값이나 사건의 비중 자체를 부풀리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더 꼬일 가능성이 있다.
인질테러사건은 비록 난감하고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하지만 예측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다. 실제로 과거의 여러 유사 사건들에서 이러한 경향성을 보여 왔으며 필자가 몇 년 전 수행한 700여건의 인질테러 사건에 대한 통계분석 결과에서도 이를 증명하는 증거들이 제시됐다. 또한 인질사건대응과 관련된 여러 원칙들과 방안들이 그 동안 축적돼 왔다.
윤민우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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