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경제방송진행자(MBC라디오 ‘손에잡히는경제’)
한국은행이 지난 17일 우리나라의 최근 잠재성장률이 3.0~3.2%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습니다. 잠재성장률은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통계는 아닙니다만, 2012년 당시 김중수 한은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3.8%라고 언급했던 것을 떠올리면 3년여 사이에 0.6~0.8% 포인트나 뚝 떨어진 겁니다. 잠재성장률이란 어떤 것이고 그게 낮아졌다는 건 무슨 의미를 갖는 걸까요. ?
사람들의 소비는 소득이나 외부여건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심리 변동에 따라 큰 폭으로 출렁입니다. 예를 들어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확산되면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소비를 줄입니다.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졌다는 소식이 들리거나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뉴스가 전해지면 역시 투자가 줄어들고 소비가 움츠러듭니다. 본인이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경우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다가 잠잠해지면 그 동안 미뤄왔던 소비를 한꺼번에 하면서 경기가 확 살아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비 수요는 달라지지만 그런 소비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생산 능력은 거의 일정합니다. 예를 들어 운동화를 하루에 1,000켤레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은 주문이 폭주하더라도 하루에 1만켤레를 생산하긴 어렵습니다. 직원들을 교대로 야근시키고 임시 직원까지 뽑아서 풀가동해도 1,200켤레 정도가 최대치일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매일 1,200켤레를 생산하려면 직원을 더 뽑아야 하는데 처음에는 인력 시장에 실업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기존 직원들 월급 정도만 주면 사람을 추가로 채용할 수 있지만 주문이 계속 몰리고 사람을 계속 채용하다 보면 시장에 남아도는 인력이 거의 사라지고 그러면 임금을 더 올려줘야 사람을 겨우 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운동화의 원가는 예전보다 더 올라가게 되죠. 운동화의 수요가 많으니 운동화 가격을 더 많이 올려도 됩니다.
이런 주문 폭주가 없었다면 운동화 가격은 매년 평소의 물가상승률 정도로 완만하게 오르는 데 그쳤겠지만 갑자기 주문이 몰리면서 제조원가도 올라가고 운동화 가격도 평소보다 더 많이 오르게 되는데요. 이 때 운동화 가격에 인상 압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으로 뽑아낼 수 있는 생산능력을 그 공장의 '잠재생산능력'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1,000켤레까지는 사람을 좀 더 뽑고 공장을 더 돌리면 운동화의 제조원가를 올리지 않고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을 생산하려면 다른 공장에서 비싼 월급을 주고 근로자를 더 데려오거나 설비시설을 확충해야 하는데 그로 인해 운동화 가격을 더 올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 운동화 공장의 잠재생산능력은 하루 1,000켤레가 되는 겁니다. 만약 어떤 나라의 모든 경제활동은 운동화를 생산하는 것뿐이고 그 나라에 공장은 그 운동화 공장 하나뿐이라고 단순화해서 생각한다면 그 나라의 잠재 국내총생산(GDP)는 연간 운동화 생산량 36만5,000켤레(1000켤레x365일)에 운동화 한 켤레 가격 10만원을 곱한 365억원이 됩니다.
실제로는 어떤 해에는 운동화 수요가 적어서 실제 GDP가 350억원에 그치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수요가 많아서 실제 GDP가 400억원이 되기도 하지만 그 나라의 잠재GDP(물가를 더 자극하지 않고 생산할 수 있는 최대량)는 정확히 365억원입니다. 만약 어떤 나라의 실제GDP가 그 나라의 잠재GDP보다 높다면 그 해에는 경기가 과열된 것이고 실제 GDP가 잠재GDP보다 낮으면 경기가 위축된 겁니다. 실제GDP와 잠재GDP의 차이를 GDP갭 또는 아웃풋 갭이라고 하는데 GDP갭이 플러스인 경우를 경기 과열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그 나라의 잠재GDP보다 실제GDP가 더 높으면 과도한 생산 수요로 인해 물가를 자극하게 되므로 인플레이션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미국처럼 수년전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어서 경제의 큰 충격을 받은 경우라면 시장에 실업자들이 많이 남아있는 상황이어서 실제GDP가 잠재GDP보다 높더라도 인건비는 별로 상승하지 않고 물가도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기도 합니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가 별로 오르지 않고 있음에도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것도 물가상승은 아직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실제 GDP가 잠재GDP를 이미 추월한 상태임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잠재GDP는 늘 일정한 게 아니라 수시로 변화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1,000켤레를 만들 수 있던 공장도 새로운 최신 생산설비를 들여오면 직원을 더 뽑지 않아도 1,300켤레를 너끈히 만들 수 있습니다. 직원들의 숙련도가 높아지거나 작업 요령이 좋아지면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하루에 1,200켤레를 뽑아내기도 합니다. 인구가 늘어나면 시장에 실업자가 많아지므로 직원을 추가로 뽑을 때 인건비를 더 올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 원가를 자극하지 않고도 최대한 늘릴 수 있는 생산량의 한계치인 잠재생산능력이 더 올라갑니다. 이렇게 자본이나 설비를 투입하거나 인구가 늘어나거나 직원들의 생산효율이 높아지거나 하는 이유로 잠재GDP도 자연스럽게 커지게 되는데 잠재GDP가 1년 전에 비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계산한 수치가 잠재성장률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그런 잠재성장률이 3% 정도입니다. 2000년대에는 4~5%였고 2010년 무렵에는 3~4%로 추정됐었는데 조금씩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3%라는 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매년 대체로 3% 정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해에는 2% 성장에 그치기도 하고 어느 해에는 4% 성장을 하기도 하겠지만 길게 보면 3%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어가는 게 보통일 것이고 그게 바람직한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바람직하기로는 이웃나라 중국처럼 우리나라도 7%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보여주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건 하루에 1,200켤레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에서 2,000켤레를 뽑아내는 것처럼 반드시 물가 상승이나 경기 과열 같은 부작용이 따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구조개혁 등을 통해서 생산성을 높여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게 최상일 텐데요. 그렇다고 해도 경제가 일정 수준에 올라서면 무한정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는 없을 테니, 잠재성장률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건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할 겁니다. ?
◆잠재성장률은 어떻게 측정할까요?
한 나라의 경제를 자동차로 비유하면 잠재성장률은 배기량이나 경제속도와 같은 개념입니다. 어떻게 달려야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지를 알려주는 수치니까요. 그러나 한 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잠재생산능력은 늘 일정한 게 아니라 자본투입이나 기술발전, 인구변화 등에 따라서 수시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관마다 잠재성장률 추정치도 제각각입니다. 잠재성장률을 추정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최근 수년간의 평균 경제성장률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라고 보고 그 추이를 분석해서 계산해내는 방식입니다. 또 다른 방식은 생산함수라는 공식을 활용해서 자본이 이만큼 투입되고 인구가 이만큼 늘면 잠재성장률이 얼마나 늘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인데 역시 오차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행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수치를 공개하는 걸 조심스러워합니다. 이견과 반론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수치를 대략이라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고성장을 하다가 저성장으로 급격히 접어든 우리나라는 잠재성장률의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매년 경제성장 성적표를 받아들 때마다 우울할 것이고 그게 다시 소비자들의 심리로 나타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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