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현상이 심각한 일본에서 노인들의 재산을 관리해온 변호사들이 의뢰인의 재산을 가로채는 범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20일 요미우리(讀賣)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에서 최근 3년간 의뢰인 재산을 가로챈 변호사 23명이 기소됐으며 피해액은 20억엔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9명은 이른바 ‘성년후견인’제도를 통해 노인 재산관리를 맡아온 변호사들이었다. 도쿄, 오사카(大阪), 효고(兵庫) 등 13개 지역에서 업무상 횡령죄와 사기죄로 변호사가 기소된 사건만 103건에 이르렀다. 특히 문제의 변호사 중 9명은 성년후견인으로 관리한 치매노인들의 재산을 착복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심지어 성년후견인의 부정비리를 막기 위한 ‘감독인’에 선임된 변호사가 예금 4,400만엔을 가로챘다가 기소된 경우도 있었다.
올 7월 한 변호사가 2명의 치매 여성 노인으로부터 5,000만엔을 횡령하는 등 고령자 상속유산의 예치금을 노린 사건이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90대 노인의 성년후견인을 맡아 계좌에서 4,200만엔을 빼돌려 쓰다 덜미가 잡혔다. 이 변호사는 할머니의 돈을 룸살롱 등을 돌아다니며 유흥비로 탕진했다고 자백하기도 했다.
성년후견인제도는 장애와 노령 등의 이유로 능력이 결여된 사람에게 법적 후견인을 정해 본인대신 재산을 관리하고 치료, 요양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일본에서 작년 말 까지 후견인으로 지정된 18만4,570명중에선 변호사나 사법서사 같은 제3자가 65%, 친족이 35%를 차지하고 있다. 후견인제도는 한국에도 있다. 지난 9일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여동생인 신정숙(78)씨가 신 총괄회장이 정상적 의사결정이 힘든 상황이라며 법원에 성년후견인 지정을 요청한바 있다.
한편 사회적 위상이 높은 변호사가 전문지식을 악용해 범죄에 손을 대는 경우가 늘어난 것은 일본의 사법제도개혁으로 변호사수가 10년전의 약1.7배인 3만6,415명으로 증가한 환경과도 무관치 않다. 과당경쟁에 따른 수입감소 역시 변호사 사기범죄 증가 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징계처분도 2005년 62건에서 지난해 가장 많은 101건으로 늘었다. 문제는 부정사례가 발각돼도 변호사 측의 지불능력이 없어 피해자가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일본변호사연합회는 변호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며 피해자에게 1인당 300만~1,000만엔 정도를 지급하는 구제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재원을 변호사회비(월1만4,000엔)로 충당할 계획이라 일부 회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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