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잠을 설쳐 가며 박찬호(42)의 메이저리그 선발 등판 경기를 시청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박찬호와 김병현(36), 서재응(38ㆍ이상 KIA)이 전성기를 누리던 ‘코리안 빅리거’는 2006년 류제국(32ㆍLG)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추신수(33ㆍ텍사스)와 류현진(28ㆍLA 다저스)에 이어 강정호(28ㆍ피츠버그)가 합류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내년엔 코리안 빅리거 제2의 르네상스를 예고하고 있다. 박병호(29ㆍ미네소타)에 이어 김현수(27)가 볼티모어에 입단하면서 추신수와 강정호, 류현진까지 코리안 빅리거가 총 5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 중인 이대호(33ㆍ전 소프트뱅크)까지 가세하면 야수만 5명이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가 1994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미국 땅을 개척할 때만 해도 한국 야구는 메이저리그의 눈에 불모지와 다름 없었다. 게다가 박찬호 이후 서재응과 김병현, 김선우(38), 봉중근(36ㆍLG)까지 대부분 투수였다. 방망이를 앞세워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는 코리안 빅리거의 위상은 과거와 의미 차이가 적지 않다.
투수의 경우 박찬호처럼 강속구를 지닌 특출한 동양인은 더러 나왔다. 하지만 일단 체격 조건이 중요한 타자의 경우 동양인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2001년 시애틀에 입단한 일본인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데뷔 시즌에 대성공을 거두자 메이저리그 각 구단은 앞다퉈 일본인 타자 영입에 열을 올렸다. 올 겨울 한국을 향한 빅리그의 시선도 그때와 비슷한 분위기다. 한국 야구 자체의 위상이 올라간데다 반신반의했던 강정호가 성공을 거둔 게 한국 선수 영입의 촉매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한국인 선수간의 ‘코리안 더비’도 심심찮게 열릴 것으로 보여 벌써부터 야구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현수가 볼티모어로 가면서 아메리칸리그에는 3명의 한국 타자들이 뛰게 됐다. 미네소타에 박병호, 텍사스에 추신수까지 같은 리그 소속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김현수와 박병호가 내년 4월5일 볼티모어의 홈구장인 캠든야드에서 개막전 맞대결을 벌인다. 6일 하루 쉰 뒤 7, 8일 2경기를 더해 3경기를 치르며 5월10일엔 장소를 미네소타의 홈 구장인 타깃 필드로 옮겨 다시 3연전을 갖는다.
4월15일부터는 텍사스와 볼티모어의 4연전이 예정돼 있다. 추신수와 박병호의 첫 대결은 7월2~4일까지 미네소타에 열리는 3연전에서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이어 두 팀은 7월8일부터 11일까지 4연전을 또 치른다.
유일하게 내셔널리그 소속인 강정호는 인터리그에서 추신수와 한 번 만난다. 피츠버그와 텍사스는 5월28~30일까지 텍사스의 홈구장인 글로브라이프파크에서 3연전을 치른다. 류현진이 순조롭게 재활을 마치고 복귀할 경우 7월5일부터 다저스타디움에서 치르는 볼티모어와의 3연전에서 김현수와 투타 맞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미국의 야구 전문매체 베이스볼 이센셜(Baseball Essential)은 18일 김현수의 선구안과 타고난 타격 능력은 어느 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김현수의 출루율이 4할 이하로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그가 출루율이 좋은 선수가 부족한 볼티모어에 필요한 선수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볼티모어의 2번이나 리드오프(1번)에도 어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두산 베어스가 홈으로 쓰는 잠실구장이 볼티모어의 캠든야즈보다 크지만, 김현수가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 적응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가 한국에서보다 홈런은 적게 터트리겠지만 2루타는 더 많이 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