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는 잊지 못할 충격이나 뼈아픈 기억을 말한다. 37년간 군에 몸담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트라우마는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일 듯싶다. 당시 군사작전을 총지휘한 합참의장으로서 F-15K전투기를 출격시키고도 북한의 도발원점을 타격하지 않아 두고두고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18일 “군 내부에서 연평도 포격은 역린(逆鱗)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라는 얘기다.
이처럼 쉬쉬하던 트라우마를 MB정권의 실세가 정면으로 거론하고 나서면서 군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15일 발간한 회고록 ‘도전의 날들,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의 한 구절 때문이다. 이 전 수석은 저서에서 “연평도 포격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전투기가 북한의 도발 원점을 타격하도록 지시했지만 군 수뇌부가 주저했다”고 혹평했다. 내년 총선 출마를 앞둔 예비후보의 마케팅전략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 62만 장병을 이끄는 한 장관의 리더십도 적지 않은 생채기를 입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평도 상공의 전투기는 왜 그냥 돌아왔나
이 전 수석은 회고록에서 “이 대통령이 연평도 상공까지 출격했던 F-15K 전투기 2대를 활용해 공격을 가하라고 지시했지만 군 관계자들이 ‘미군과 협의할 사안인데다 동종ㆍ동량의 무기로 반격해야 한다는 유엔사령부 교전수칙에 어긋난다’며 반격을 주저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이어 “특히 한심한 건 당시 F-15K에는 공대지미사일이 장착조차 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요약하면 당시 군 지휘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겁쟁이인데다 북한의 도발에 맞선 대비태세도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일면 타당하지만 상당한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5년 전 연평도 포격 직후 군 당국의 설명과도 다르다. 하지만 평소 같으면 호들갑스럽게 입장자료를 내고 언론 브리핑을 자처했을 국방부가 유독 이 사안만큼은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못한 채 냉가슴만 앓고 있다.
먼저 F-15K가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하지 않고 출격했다는 대목부터 살펴보자. 한 장관은 2014년 6월 2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처음 출격한 F-15K전투기는 초계(경계)비행 중이었기 때문에 공대공 무장만 달고 투입됐다”고 인정했다. 국방부도 14일 브리핑에서 “작전 효율성 때문에 초계 전력에는 공대지미사일을 탑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포격이 발발해 F-15K가 부랴부랴 연평도까지 날아갔지만 지상이 아닌 공중의 목표물만 타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F-15K의 공대지 무기인 슬램ER, 합동직격탄(JDAM) 등은 파괴력이 큰 반면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한 상황에서만 전투기에 장착해 출격한다는 게 공군의 설명이다.
따라서 이 전 수석의 매몰찬 지적에 대해 군 당국이 “군사작전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라고 받아칠 법도 하건만 어찌된 일인지 몸을 사리고 있다. 발목을 잡는 원죄(原罪)가 있기 때문이다.
포격 당일 북한의 1차 포격은 2시34분, 2차 포격은 3시12분 이뤄졌는데 대구공군기지에서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한 F-15K는 북한의 1차 포격 이후 1시간 이상 지나서야 간신히 출격할 수 있었다. 쌍방이 불을 뿜는 화력전이 이미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군 당국은 이 같은 F-15K의 늑장 출격을 당시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포격 직후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국회에 출석해 “북한의 공격 징후를 이미 8월에 알았다”고 공개하며 일방적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면서 군은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부실한 대응타격에 대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유구무언(有口無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우리 군이 미군과 협의하느라 반격을 주저했다는 이 전 수석의 지적도 한 장관으로서는 뼈저린 대목이다. 다음은 2014년 한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대화록의 일부다.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이명박 대통령은 ‘군의 반대 때문에 (폭격을) 못 했다’고 했다. 2013년 퇴임 직전 인터뷰에서도 ‘군에 공습을 지시했으나 우리 군 수뇌부가 유엔사 교전규칙 등을 내세워서 공습을 반대했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사실인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 후보자) 그것은 저하고는 있었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그 문제를 답변 드리기는 적절치 않다.”
-(안) 당시 합참의장이 모르면 누가 이 내용을 알지요.
“(한)….”
이처럼 청와대가 연평도 포격 당시의 군 지휘부를 우유부단한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한 장관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당시 장관이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도 이 전 대통령의 대응타격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 함구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다면 통수권자에 대한 군 지휘부의 명령 불복종이 되고, 지시가 없었다면 우리 군이 북한군의 도발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포격 당일 미군은 한미 연합사 회의에 이어 유엔사 회의까지 4시간 가량 대책을 찾는데 골몰했다.(한국일보 2010년 12월 10일자 1면, 3면) 결론은 폭격 불가였다.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이라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우리 군이 독자적으로 북한의 도발원점을 타격하려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유낙준 전 해병대 사령관도 최근 인터뷰에서 연평도 포격 당시의 상황에 대해 “우리는 K-9자주포로 대응 사격하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전투기나 함정지원은 우리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안타까운 부분이다”고 토로한 바 있다.
국방부가 연평도 포격에 대해 함구하는 이면에는 명칭을 둘러싼 논란도 작용했다. 국방부는 연평도 ‘포격 도발’을 ‘포격전’으로 바꿔달라는 해병대의 줄기찬 요구에 대해 수년째 머뭇거리고 있다. 포격전은 쌍방 전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F-15K전투기가 출격했다가 빈 손으로 돌아온 부분을 설명할 수 없는 탓이다.
군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연평도 포격을 들먹이며 군 지휘부를 흔들 때마다 상당히 불쾌하지만 덩달아 정치놀음에 휩쓸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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