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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트럼프를 어쩌나

입력
2015.12.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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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은 2008년 민주당 예비선거는 좀처럼 승부를 내지 못했다. 오바마가 줄곧 앞서 나갔지만 결정적인 한방을 터트리지 못했다. 힐러리가 레이스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과반수 대의원을 확보한 후보가 없을 경우 전당대회에서 후보지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슈퍼대의원의 존재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전에 지지 후보를 표명하지 않는 슈퍼대의원도 민의에 따라 지지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는 지도부 방침에 속속 오바마로 돌아서면서 힐러리의 경선 가도는 종지부를 찍었다.

▦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는 과반수 대의원 획득 후보가 없는 상태에서 열린 전당대회의 첫 번째 후보 지명투표에서도 승부가 갈리지 않을 때 성립된다. 이 경우 사전에 특정후보 지지를 표명한 대의원들은 다음 투표부터는 상대편 후보도 선택할 수 있다. 과반수 후보를 내기 위해서다. 박빙의 경선 국면에서 결국 슈퍼대의원의 표심이 최종 후보를 결정짓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여기서 선출된 후보가 유권자의 뜻과 괴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 1924년 민주당 전당대회는 중재 전당대회의 ‘끝판’을 보여준 대회였다. 금주법과 백인우월단체인 KKK의 인정여부를 놓고 팽팽히 맞선 알프레드 스미스와 윌리엄 매카두 두 후보는 무려 99번이나 거듭된 전당대회 지명투표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하자 100번째 투표를 앞두고 결국 지명 경쟁을 철회했다. 변호사인 존 데이비스가 103번째 투표에서 후보지명을 받는 어부지리를 얻으면서 미국 역사상 최장인 17일 동안의 전당대회는 끝날 수 있었다. 가장 최근 ‘중재’된 1952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경선에 참여하지도 않은 아들레이 스티븐스 일리노이 주지사가 후보지명을 받기도 했다.

▦ 도널드 트럼프가 온갖 막말과 기행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경선 여론조사에서 폭풍의 질주를 이어가자 당 지도부가 그를 후보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중재 전당대회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공식 경선 시작도 전에, 그것도 과반 득표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의 과반 득표를 막기 위해서라니 공화당의 고민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지자 중 그가 무소속으로 나와도 표를 던지겠다는 유권자가 70%에 달한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란 말이 빈말이 아니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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