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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자기] 해외무역의 선구자 영락요(1402∼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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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자기] 해외무역의 선구자 영락요(1402∼1424)

입력
2015.12.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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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영락청화사계화문관

사진속 명영락청화사계화문관의 1대(한쌍) 경매가는 무려 68억원이나 된다.

영락요는 그만큼 가치와 아름다움이 남다르다.

1402년 7월17일, 중국 땅에 새로운 황제가 탄생했다. 명왕조가 탄생한지 35년, 세 번째의 황제였다. 그러나 금과 옥으로 꾸며진 화려한 옥좌에 오르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친조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뿌린 4년 동안의 치열한 내전의 결과물이 었기 때문이다. 천하가 안정되어가자 영락제는 뭔가 거대한 것에 대한 동경을 유감없이 충족시켜 나갔다. 세계최대의 궁성인 자금성을 축조하고 만리장성을 개축하고 대운하를 확충했다. 그리고 적극적인 해외무역 정책을 시행하여 수차례에 걸쳐 유명한 정화(鄭和)의 대원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대규모의 해외무역작전으로 그 영향권은 남지나해에서 인도양 연안·아라비아해·아프리카 동해안에 걸친 광대한 지역에 이르렀다. 이와 더불어 양질의 코발트 안료가 서방으로부터 수입되었다. 이것은 '소마리청'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망간의 함유량이 낮아 선명한 청남색을 띠었다. 소마리청 안료를 사용한 영락기의 우수한 청화는 해외무역을 통하여 이슬람권으로 수출됐다.

관요자기의 기준과 관요자기의 사사로운 매매와 거래에 대한 많은 궁금증들이 있어 왔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명영종실록'에서는 정통3년(1438)에 '도찰원에 방문을 내어, 강서 자기 요장에서 관요형태의 청화자기를 제작하는 것과 이를 파는 것, 그리고 집에 가지고 가는 것을 금하며, 위반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모든 가족은 외곽 지방에 귀양을 보낸다'고 적고 있다. 또 정통12년(1441)에는 '강서 요주부에서 사사로이 황·자·홍·녹·청·청화백자 등을 만드는 것을 금한다. 도찰원에 명하여 각처에 방문을 내리니 감히 개의치 않고 금한 것을 따르는 자는 잔혹하게 사형하고 그 소속된 일가를 헤아려 장정은 변방에 군노역을 보내고 알면서도 고하지 않는 자는 연좌하라'고 전한다. 황실용 자기의 민간 소용에는 엄격한 규제를 가한 것을 알 수 있다.

'경덕진도록'에서는 영락요에 대해 태토는 찰흙으로 기벽이 두터운 편이나 탈태처럼 매우 얇은 것도 있으며 하얀 백자에 채문과 투조를 이용하여 문양을 시문하기 시작한 것이 영락요부터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 영락자기 중에서 선홍유자기가 가장 귀하다고 하여 영락 홍유에 대해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영락기의 청화백자는 원 청화백자의 중후함에서 보다 유려한 세련미를 갖추게 됐다. 영락시기 청화의 문양으로는 과실문양은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 길상은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는 석류와 포도 등이 시문되었다. 동물문으로는 용문양이 구름, 파도와 함께 역동적으로 표현됐다. 영락기에는 갈채나 홍채, 금채도자기도 만들어졌으며 경덕진의 주산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중심은 역시 청화백자가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첸쩡샤는 '중한고미술협회'이사로 1,000여점의 중국도자기를 두루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C'는 중국도자기(Chinese ceramics)를 뜻한다.

채준 기자 dooria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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