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저항 음악가 빅토르 하라 평전 20년 만의 개정판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칠레 저항 음악가 빅토르 하라 평전 20년 만의 개정판

입력
2015.12.18 20:00
0 0

송병섭ㆍ삼천리 대표

“지구 반대편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무더위가 식어가는 2008년 여름 어느 새벽, 마감 직전까지 기다리던 이메일이 하나 들어왔다. 칠레에서 지은이 조안 하라가 보낸 한국어판 서문이다.

삼천리 출판사의 첫 책은 민중을 위해 노래한 예술가의 평전 ‘빅토르 하라’이다. 1988년에 ‘끝나지 않은 노래’(한길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에 에필로그를 붙인 20년 만의 개정판이다. 대학 새내기 때 한길신서 목록 가운데 이 책을 읽은 것은 우연이었지만, 창립한 출판사 목록의 맨 앞자리에 넣은 것은 작은 선언이었다.

빅토르 하라는 칠레의 연극 연출가이자 시인, 민중 가수다. 문화예술 운동가로서 삶의 마지막까지 ‘벤세레모스(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며 민중에게 용기를 북돋우다가 기타를 든 손가락이 뭉개지고 팔이 부러진 채 군인들에게 처참하게 사살 당했다. 이 책은 그의 아내 조안이 대신 쓴 자서전이다. 빅토르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그들이 만나게 된 일을 시작으로 학생운동과 민속음악 운동으로 이어지는 삶 속에 역동적인 칠레 현대사가 녹아 있다.

남편을 잃고 두 딸과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조안 하라!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이메일을 보내니 전화를 해 달란다. ‘대본’을 미리 적어 덜덜 떨며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웬걸 자꾸 스페인어로 떠드는 빅토르하라재단 일꾼들이 전화를 받는 바람에 진땀이 났다. 하루건너 한 번씩 통화를 시도한 끝에 “헬로!” 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새 여든의 할머니가 된 조안의 음성은 차분하고 따뜻했다. 조안은 젊은 시절 국제 현대무용단에서 활약하다 칠레국립대 교수가 된 영국인이다. 거기서 남편이 될 대학생 빅토르를 만났고, 부부는 문화예술 활동가로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의 탄생에 힘을 보탰다.

지구 반대쪽 대륙과 어설프게 교신하면서 어찌어찌 일은 진행되어 마침내 한국어판 저작권과 번역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가 한여름이면 칠레는 한겨울이고 한낮이면 한밤중, 공전과 자전이라는 지구과학을 그때 새삼 실감했다. 수소문 끝에 북아메리카의 외진 도시에 머물고 있던 번역가 차미례 선생과도 연락이 닿았다.

책을 펴내니 곧 반응이 왔다. 출판사로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격려하기도 하고, 그냥 가슴이 벅차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는 이도 있었다. 어떤 인권단체에서는 하라의 삶을 다룬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를 함께 보고 책도 사 주었고, 문화예술단체 활동가나 노동조합 문화 일꾼들이 입소문을 냈다. 이역만리에 남편을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를 지은이에게 전달할 수 있어 흐뭇했다.

올해 7월 칠레 법원은 빅토르 하라를 살해한 책임자에게 42년 만에 유죄 선고를 내렸다. 지금 칠레의 대통령은 쿠데타 세력에 맞서 아옌데 정부를 지키다 세상을 떠난 칠레 공군 장성의 딸이다. 조안과 빅토르의 행복한 시절을 함께한 두 딸 마누엘과 아만다에게 인사를 보낸다.“펠리스 나비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라이브 이슈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