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이윤엽 '나는 농부란다'

나는 농부란다
이윤엽 글ㆍ그림
사계절 발행ㆍ60쪽ㆍ1만1,000원
씨를 뿌리던 거친 손, 휘어진 허리, 딴딴한 장딴지를 지닌 농부는 "작은 생물들도 함께 농사를 짓는 것”이라며 햇빛, 물, 바람, 흙에 공을 돌리는 겸손함까지 지녔다. 사계절 제공

사람살이의 기본인 옷, 밥, 집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밥이다. 밥―먹을 것은 대부분 땅에서 나온다. 땅은 어머니처럼 모든 걸 받아 주고 키워 준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러하듯, 땅이라 해서 아무 때나 아무 거나 다 받아 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농부가 있다. 땅을 알고 때를 아는 사람. 이 그림책은 농부의 일과 삶을 말한다.

“어르신, 농사 가르쳐 주세요. 씨는 언제 뿌려요?” 묻는 초보 농군에게, 주름 골 깊은 ‘농부’가 답한다. “다 때가 있는 법이여!” 그러고는 퉁명스런 표정과는 달리 차근차근 일러준다. 땅과 농사와 농부의 삶을. 땅은 다 다르다. 물을 가둬 벼를 기르는 논이 있고 물이 잘 빠져 채소가 자라는 밭이 있다. 밭도 콩 잘 되는 밭, 깨 잘 되는 밭, 고구마 잘 되는 밭이 따로 있다. “나는 어느 땅에 무얼 심을지 훤하게 알지.”

까치가 둥지를 틀 무렵 농부는 헛간에서 농기구들을 꺼낸다. “나는 벌써 마음이 설레어. 빈 논과 밭이 푸릇푸릇 채워지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거든.” 쑥과 냉이가 얼굴을 내밀 때 농부는 거름을 뿌린다. “거름을 먹고 곡식들이 자라면 우리가 맛있게 먹고 똥을 누지. 그 똥은 다시 거름이 되어 곡식을 키우는 거야.” 제비 돌아오는 오월, 농부는 아주 바쁘다. 논밭을 갈아엎고, 채소 모종을 옮겨 심는다. “농부가 이때에 꼭 해야 하는 일이야.” 벼 모를 기르는 일도 이때 하는 일이다. 모가 자라면 논에 옮겨 심는다. 그때 농부의 마음은 초록으로 가득 찬다. 그리하여 온 마을에 연둣빛이 넘실거릴 때, 농부는 한시름 놓고 장에도 가고 가까운 데로 놀러도 간다. “농부가 맨날 일만 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 일할 때가 있고, 쉴 때가 있고, 놀 때도 있는 거야.” 그리고 다시 일. 논두렁도 손보고 가지며 고추 곁순도 따 준다. 김매고 벌레도 잡는다. 초록 짙은 여름엔 가지, 고추, 토마토… 잘 여문 열매들을 딴다. “자동차가 아무리 좋아도, 컴퓨터가 아무리 좋아도 먹을 수는 없잖아. 우리가 먹는 건, 씨 뿌린 농부의 거친 손에서 나와. 풀을 뽑느라 휘어진 농부의 허리에서 나오지. 부지런히 논두렁 밭두렁을 오간 농부의 딴딴한 장딴지에서 나오는 거야.”

자부심이 뚝뚝 묻어난다. 지혜가 번득인다. 설렘과 보람이 배어나온다. 그러나 오만하지 않다. “농부 혼자서 농사를 짓는 건 아니란다. 햇빛과 물과 바람과 흙,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들이 함께 짓는 거야.” 시련도 겪는다. “큰비가 쏟아지고 태풍이 닥치면, 벼와 고추와 토마토와 옥수수가 물에 잠기고 흙에 파묻혀. 줄기가 부러지고 어린 열매가 떨어지면 내 마음도 무너져.” 그래도 농부는 굳세다. “슬프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여럿이 힘을 합쳐 쓰러진 벼와 고춧대를 다시 세워. 농부는 날마다 보살피고 가꾼 것을 포기하지 않아.” 그 시련과 수고를 겪고서야 가을, 농부는 결실을 얻는다. 베고 따고 털고 말리고 담고… 수확 또한 큰 수고다. 그래도 농부는 기쁘다. “보기만 해도 배불러. 한 알 한 알 얼마나 예쁜지 몰라.” 그리고 겨울, 농부는 쉬엄쉬엄 이듬해를 준비하며 휴식기에 들어간다. “그 동안 애쓴 땅이 하얀 눈을 덮고 쉬고 있어. 나도 좀 쉬어야지.”

꼭 이런 농부 한 분이 이 겨울, 고향집이 아닌 서울의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백남기씨. 피폐한 농정에 항의하다가 경찰의 위법적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과는커녕 진상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대체 무얼 먹고 사는가? 간절히 바란다. 농부여, 일어나시라. 이 책에서처럼, 일어나 외쳐 주시라. “나는 농부다. 너희 입에 들어가는 것을 내가 짓는다!”

김장성ㆍ그림책 작가(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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