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선택과 갈등의 연속 … 고정된 원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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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선택과 갈등의 연속 … 고정된 원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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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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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번역

윤영삼 지음

글항아리 발행ㆍ416쪽ㆍ1만8,000원

우리는 모두 다른 나라 말을 쓴다. 같은 한국어로 말해도 내가 하려는 말과 상대방이 이해한 말은 차이가 날 수 있다. 번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언어가 다르면 문화도 사고방식도 다르다. 제대로 전달하기란 실패하기 쉬운 모험일 수밖에 없다.

40여 권의 책을 번역한 윤영삼(45)씨가 쓴 ‘갈등하는 번역’은 번역 실무에서 이론까지 번역가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초보 번역자나 번역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썼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번역의 기술이 아니다.

“번역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왜 번역을 하는가, 다시 말해 번역 행위의 목적입니다. 번역은 원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를 목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작업이고 목표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따라서 어떤 내용을 어떤 목적으로 어떤 대상에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단어와 문장에 갇히면 텍스트를 배반하는 일이 생깁니다. 원문대로 잘 번역한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이 책은 출발 언어를 도착 언어로 옮기기까지 번역가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 과정은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다. 번역은 결국 갈등하는 번역일 수밖에 없다.

번역가 윤영삼. 내년 초 발간할 예정으로 ‘검은 색의 역사’라는 책을 번역 중이다. 윤영삼씨 제공

책은 번역을 둘러싼 다양한 고민을 털어 놓고 질문을 던지며 길을 찾는다. 번역이란 무엇인가?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원문을 충실하게 옮기는 게 최선일까? 한국어답게 옮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한국어다움이란 무엇인가? 여러 원칙들이 알려져 있긴 하다. ‘있을 수 있다’는 문장을 쓰지 말라, 문장 길이를 살려라, 간결한 문장으로 번역하라 등등.

결론부터 말하자. 저자는 “번역을 하는 데 고정된 원칙은 없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규칙이나 규범을 의심하라”고 권한다. 기존 번역 가이드나 글쓰기 책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다. 그런 책을 꾸준히 읽고 언어 감각을 키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사소한 처방이나 혼란스런 규칙만 좇다 보면 글쓰기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길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번역 강의 수강생들이 번역한 예문을 먼저 제시하고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잘 됐는지 지적한 다음 번역 이론과 함께 추천 번역문이 나온다. “이렇게 써야 한다”가 아니라 “더 나은 번역의 특성은 어떠할까” 거듭 질문하면서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번역은 원작의 그림자가 아니며, 번역자는 저자와 독자 사이에 끼어 있는 투명인간이 아니다”라고 썼다. 번역은 중재이고 선택이지만, 선택의 효과는 누구든 평가하고 비교할 수 있으므로, 번역자는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갈등하는 번역가로서 그가 하는 고민과 조언은 한국어로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 예를들면 이런 것들. “글을 쓰는 사람은 늘 모든 말을 거리를 두고 볼 줄 알아야 한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의미가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낯설게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번역가의 첫 번째 소양은 ‘배울 줄 아는’ 능력이다. 살아 있는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원천은 언제나 ‘사람’이다. 사람에 관심을 갖고 세상을 직접 경험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매우 학구적이면서 실용적인 책이다. 정밀하고 체계적이다. 개인적 경험이나 감각에 의존해 두무뭉술 막연한 원칙을 제시하거나, 글쓰는 사람의 자세를 이야기하는 책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모처럼 번역 이론과 실무를 제대로 다룬 책이 나왔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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