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3년 아메리카 대륙이 눈 앞에 펼쳐진다. 미개척 지역인 아메리카 대륙의 광활한 풍광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레버넌트’)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 이전인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 모피 사냥꾼인 휴 글래스(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삶을 따라가며 역사 속에 지워진 풍광을 스크린에 펼쳐낸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 극장에서 공개된 50분 분량의 ‘레버넌트’ 영상은 자연의 공간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미 서부 개척역사에서 빠질 수 없다는 전설적인 모험가 글래스의 실화를 옮긴 영화로 글래스의 험난했던 행적을 묵묵히 보여준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영화 ‘버드맨’으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멕시코 출신으로 세계적 대가의 자리에 오른 이냐리투가 그려낸 대자연의 영상은 호흡을 멈추게 할 정도로 정교하다. 특히 일행을 이끌고 험난한 숲을 헤치며 길을 안내하던 글래스가 공포의 대상이었던 회색 곰을 만나 이리저리 찢기는 장면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해 실제와 같은 곰을 재현한 이 장면에서 디캐프리오와 곰의 격렬한 몸싸움은 오싹할 정도의 위압감을 준다. 카메라는 곰의 움직임과 표정, 눈빛, 숨소리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록키산맥과 인접한 캐나다 캘거리의 거대한 자연이 함께 하는 장면이라 더욱 인상적이다.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으로 실시간 화상 기자간담회를 연 이냐리투 감독은 실제와 같은 곰을 스크린에 구현한 것에 대해 “CG 이외에 다양한 기술을 적용했지만 기밀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는 바가 있을 테니 이를 망쳐놓고 싶지 않다”며 답을 피하는 이유를 덧붙였다.
영화는 글래스를 통해 생존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담는데 주력한다. 인디언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호크를 대동하고 동료들과 사냥길에 나선 그는 예상치 못한 곰의 무차별 공격을 받고 생사의 기로에 놓인다. 설상가상으로 동료의 배신으로 인해 아들을 잃게 되면서 그는 복수를 위해 고통과 추위, 배고픔과 싸워가며 초인적인 힘으로 4,000㎞가 넘는 긴 여정을 거쳐 살아남는다.
이냐리투가 지휘하고 디캐프리오가 열연해 영화 완성도에 대한 기대가 높다.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던 디캐프리오가 내년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첫 수상의 영예를 안을지 모른다는 예측이 벌써 나온다. 이냐리투 감독이 2년 연속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을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예상도 함께 한다. 다음은 이냐리투 감독과의 일문일답.
-‘레버넌트’가 지난 5년 동안의 꿈이었다고 들었다.
“이 영화와 관련된 준비를 한 건 5년 전 ‘버드맨’에 앞서서다. 2010년 말부터 촬영지를 물색했다. 그러나 시기상 다양한 일들로 인해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작업을 시작할 수 없었다. 결국 ‘버드맨’ 이후에 ‘레버넌트’를 시작했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힘들지는 인지하지 못했다. 잘 마무리를 했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다.”
-곰이 CG로 구현됐다는데.
“어떻게 그 장면이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관객들의 기대와 상상하는 바를 망쳐놓고 싶지 않다. (자세히 말하면) 감흥을 망칠 듯하다. CG 외에 다양한 기술과 기법을 적용했다. 기밀로 하겠다.”
-영화 찍을 때 3가지 원칙이 있었다는데.
“시간과 공간, 빛이 영화의 정수다. 나의 의무는 시간 내에 이 공간을 창조하면서 적절한 빛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이 영화가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 영화를 통해서는 그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관객이 시간과 공간에 푹 빠지길 바랐다. 인물들이 느끼는 정서적인 경험들을 잘 포착해내길 바랐다. 공간들을 통해서 그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죽음과 대자연이라는 것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나.
“제 생각에 모두가 죽게 되어 있다. 이 영화는 죽고 나서 다시 탄생하는 것에 대한 얘기다. ‘레버넌트’(Revenant)가 죽음에서 돌아온 자라는 뜻이다. 죽음에 이르게 되면 현실 세계에서 삶을 다시 생각하고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꿈에 대한 영적인 장면들이 있다. 캐릭터가 가진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주인공인 휴 글래스는 말이 없다. 말이 없기 때문에 영화적 관점에서 내면의 의식을 표현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관객들이 숨어있는 영웅들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디캐프리오와의 작업은 어땠나.
“디캐프리오와 작업하는 건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는 놀랍고 용감하고 재능 있는 배우다. 영화 속에서 대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눈과 몸짓으로 연기를 해줬다. 자상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떤 부분이 생각보다 어려웠는지?
“준비하는 데 있어서 기술적으로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한 사실성과 진실성을 담는 게 어려웠다. (지형적으로) 춥고 고도가 높았고, 동물과 연기를 해야 하는 장면, 굉장히 많은 배우가 필요한 장면 등이 어려웠다. 자연을 롱테이크(한 신을 편집하지 않고 길게 이어가는 영화 기법)로 담아야 했다. 이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서 꼼꼼해야 했다. 그리고 영화 속 장면 90%가 자연을 배경으로 했지만 자연과는 타협이 없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었다.”
-원래 실화에서는 아들의 얘기는 없다.
“아들은 내 영화에 항상 등장하는 대상이다. 부자관계가 항상 등장한다. 혈연은 원시적이고도 복잡한 관계라서 집착하게 된다. 또 (혈연관계는) 우리가 항상 경험하는 것들이다. 아들은 이 영화에서 혼혈이다. 반은 백인, 반은 원주민이라 더욱더 삶이 복잡하다. 그 시대에도 인종 차별주의나 선입견이 강했다. 미국의 현재와도 다르지 않다. 현재와도 연결된 부분이다.”
-한국 팬들을 위한 영화 감상 포인트를 알려달라.
“한국 분들이 영화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보신 뒤에 새로운 느낌을 받으셨으면 한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지구를 느끼기를 바란다. 우리는 콘크리트 등에 둘러싸여 살고 있어 자연의 기운을 느끼지 못한다. 관객들에게 자연에 대한 나의 순수한 ‘오마주’(경배)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스마트폰이나 TV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극장에 가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고 싶었다. 신의 언어를 통해 자연을 보여주려고 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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