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지만, 우린 배가 고프지 않아.’
미국 타임지가 지난 1일(현지시간) 가수 싸이(38·박재상)의 신곡 ‘대디’를 올해 ‘최악의 노래 톱10’ 중 네 번째로 언급하며 내놓은 평이다. ‘유 비 마이 커리, 아윌 비 유어 라이스(You be my curry, I’ll be your rice)’란 맥락 없는 가사를 비꼰 것이다. ‘슬랩스틱 비디오의 우스꽝스런 영상을 빼면 감흥 없는 가사에 평범한 댄스 음악만 남는다’는 혹평도 덧붙였다. 타임지의 지적처럼 노래에 대한 반응이 공개 15일여 만에 6,000만 조회수를 돌파한 뮤직비디오처럼 뜨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8일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인 ‘핫100’에 97위로 진입했던 ‘대디’는 한 주 뒤인 15일 발표된 같은 차트의 순위권에서 사라졌다. 2012년 ‘강남스타일’로 일군 유명세로 새 앨범 7집 ‘칠집싸이다’ 컴백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뒷심까지 따라 주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라제기 기자(라)=“빌보드를 보니 ‘대디’가 미국에서 이달 첫째 주 온라인 스트리밍수는 300만 건인데, 다운로드 수는 4,000건밖에 안 된다. 미국 소비자들도 ‘한 번 들어볼까?’까지지, 다운로드 받을 만큼 곡 자체에 큰 가치를 두는 건 아닌 것 같다. ‘강남스타일’ 이후 전형적인 비디오형 가수가 됐다랄까.”
강은영 기자(강)=“곡이 너무 단순하다. 수출용이라며 ‘강남스타일’식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에만 포커스를 맞췄을 뿐, 발전한 느낌이 없다.”
조아름 기자(조)=“싸이한테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흥이 아닐까? 싸이는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걸 집중 공략하는 거고. ‘대디’도 그런 점에서 나쁘진 않았다.”
양승준 기자 (양)=“흥이 싸이 매력의 전부는 아니다. 엉뚱한 춤과 곡의 흥에 가사의 힘이 뒷받침돼 싸이가 지금 이 자리에 올랐다. ‘강남스타일’도 ‘말춤’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속 강북·강남 스타일에 대한 편견을 끄집어내 통쾌했다. 그런데 ‘대디’는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라=“곡으로만 보면 ‘대디’보다 ‘나팔바지’가 더 좋다. 왜 ‘대디’를 글로벌용으로 내세웠을까란 의문도 든다.”
양=“‘대디’는 블랙아이드피스 멤버인 윌 아이 엠의 곡 ‘아이 갓 잇 프롬 마이 마마’ 패러디 같다. 후렴 부분에 ‘웨어 두 유 겟 유어 바디 프롬’과 ‘아이 갓 잇 프로 마이 마마’란 가사가 반복되는데, 마마를 대디로 바꾸면 ‘대디’와 겹친다. 곡 크레딧을 보니 윌 아이 엠이 들어가 있더라. ‘대디’ 속 시계춤 안무는 뉴키즈온더블럭의 ‘유 갓 잇’ 춤을 떠올린다. 이런 미국적인 요소를 활용하려 한 것 같다.”
강=“타임 평을 보니 미국에서 올 초 ‘아빠 몸매’ 열풍이 일었는데 ‘대디’가 이 시기를 잘 탔다고 했다. 싸이가 수출용으로 왜 ‘대디’를 내세웠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안 했는데, 전략적으로 미국시장을 노린 것 같다.”
라=“7집을 앨범으로 들으면 호감이 커진다. 자이언티가 피처링한 곡 ‘아이 리멤버 유’는 멜로디가 세련됐고, ‘아저씨 스웨그’는 가사가 귀에 꽂힌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의 시선이 앨범에 담겨 있어 풍성한 느낌이다.”
강=“타이틀곡이 아니라 다른 수록곡을 들어야 싸이의 변화가 보인다. 20대 싸이는 연애와 사랑 얘기만 했는데, 내년 마흔을 앞둔 싸이는 7집에서 ‘세월의 흔적을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어 나는 아저씨’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앞으로가 기대된다.”
양=“그런데 언제부턴가 싸이는 시쳇말로 까면 안 된다는 감정이 있다. 군대를 두 번 다녀온 데 대한 동정심,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에 K팝을 알린 인물이라는 애국심까지 발동하게 만든다.”
라=“인생 역전이다. ‘철없는 농담하고 있네’라고 봤던 가수인데 국민적 영웅이 됐다. ‘국뽕’(국가에 대한 과도한 자긍심에 도취된 상황을 비꼬는 말) 현상도 있는 것 같다. 박찬호가 199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니 뿌듯해 했는데 그게 지금 싸이한테 적용된다. 그렇게 싸이를 소비하는 분위기가 촌스럽기도 하다.”
조=“싸이는 ‘금수저 연예인’인데 B급 음악을 하는 게 이중적이다. 데뷔 시절 반도체업체 사장 아들이란 뒷배경이 알려져서인지 B급인데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묘하다. ‘강남스타일’ 전에는 ‘날라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영어까지 잘하는 걸 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 싸이 유학파(버클리음대)지?’라며 ‘고급진 B급’의 이미지가 생겼다.”
양=“그럼 마흔을 앞둔 ‘고급진’ B급 싸이는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까?”
강=“난 ‘새’가 싸이의 진수라고 생각한다. ‘강남스타일’을 버리고 ‘새’를 미국진출용으로 하면 대박날 것 같다.”
조=“싸이는 몸짓 하나로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새로운 퍼포먼스에 집중하면 오래갈 것 같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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