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영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서울시사회복지대책위원회 발족
“정부 현금성 급여 미흡한 수준… 청년수당 등은 복지 보완으로 봐야
지자체 고유사업 폐지는 자치권 침해, 지역주민이 문제제기해야 할 사안”

“정부가 복지도 국정화를 하려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침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복지 재정의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복지를 축소하려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윤찬영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7일 한국일보와 만나 “지자체 사회복지사업의 정비 법안은 위법하고 부당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정부가 복지 재정 효율화를 이유로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보장사업 가운데 중앙정부와 유사하거나 중복이 우려되는 사업을 정비해 나가기로 한 데 대한 비판이다.
국무총리 산하 사회보장위원회는 지난 8월 각 지자체가 자체 사회보장사업으로 실시하는 5,981개 사업 중 1,496개 사업이 유사ㆍ중복 사업이라며 정비하라는 ‘지방자치단체 유사ㆍ중복 사회보장사업정비 추진 방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각 지자체에 지침을 보낸 데 이어 정비추진단을 구성해 사회보장사업을 정비 중이다. 정부는 또 복지부와 사전협의 없이 임의로 복지 제도를 추진할 경우 지방교부금을 삭감하는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도 이달 초에 내놓았다. 서울시의 청년수당과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겨냥한 것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윤 교수는 이날 서울 명동성당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사회보장 축소 저지를 위한 서울시사회복지대책위원회 발족 및 토론회’에도 참석해 정부의 사회보장사업 정비 계획을 비판했다. 그는 “정비 대상인 사업은 지자체가 국비 보조 없이 자체 예산으로 시행하고 있는 고유 사업”이라며 “자치 입법인 조례를 제정해 지방의회를 통해 편성한 예산으로 시행하는 것을 중앙 정부가 폐지하라고 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라고 말했다.
사회보장사업의 유사ㆍ중복에 대해서는 “정부의 급여 수준이 미흡하여 지자체가 보충해 급여하는 경우이니 문제될 게 없다”며 “문제의식이 미약한 지자체가 정부 사업을 흉내 내서 따라 하는 경우도 지방의회나 유권자인 지역 주민이 문제를 제기할 사안이지 정부가 관여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사회보험 본인부담금 지원 및 정부 사업과 동일한 목적의 현금성 사업을 폐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윤 교수는 이에 대해 “저소득층의 적절한 사회보장 이용을 막아 오히려 악화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현금성 급여가 지극히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금성 급여의 중복이라고 폐지하라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라며 “이 경우 중복이 아니라 보완이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지자체 사업을 폐지하라고 명령하거나 권고하는 것은 자치권의 본질에 대한 침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보장위원회는 중앙행정기관이 아니며 복지부가 할 수 있는 조언ㆍ권고ㆍ지도는 일반 사무에 관한 것일 뿐 “자치 사무의 본질적은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이번 정비 방안은 지극히 반(反)복지적인 조치이며 장기적으로 사회복지 분야에서 지자체 및 민간기관을 철저하게 종속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한정된 지자체 예산을 자체 복지사업에 투입할 경우 정부의 매칭사업에 투입할 지자체 재원이 부족해질 수 있으니 지자체 복지사업을 축소시켜 남는 재원을 정부의 새로운 복지사업 예산으로 쓰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비 방안은 복지 사업 추진에 소극적인 지자체가 기존 사업을 더욱 축소하도록 만들 가능성도 있다.
윤 교수는 “지자체장 또는 지방의회가 정비 지침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며 “시민들도 정부의 정비 방안에 편승하려는 지자체장에게 항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남시는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고 서울시도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교수는 “복지는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힘을 합쳐 해야 한다”며 “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지자체는 가만히 있으라는 식이니 어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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