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14일 런던의 한 행사장에서 연설을 앞두고 목을 축이고 있다. 런던=AP연합뉴스

올해의 마지막 유럽연합(EU) 정상회담 개막을 하루 앞둔 16일(현지시간) 밤 벨기에 브뤼셀 EU본부 주변은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카키색 군용트럭들이 본부 빌딩을 수 겹으로 둘러싸는가 하면 경찰들은 일찌감치 중심가를 봉쇄했다. 지난달 파리 테러 이후 브뤼셀 일대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의한 공격 우려가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BBC는 이날 브뤼셀에서 가장 긴장된 사람은 경계 경비에 투입된 경찰이나 군인이 아니라 바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라고 지목했다. 17일 오후 이곳 EU 본부에서 만찬을 시작으로 이틀 동안 27개 EU회원국 정상들을 맞아 이른바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EU 탈퇴)’의 운명을 걸고 중대한 합의를 끌어내야 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2017년까지 영국의 EU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한다고 약속한 캐머런 총리가 과연 EU 잔류의 ‘대가’를 다른 회원국 정상들로부터 얼마나 얻어 내, 영국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17일 AFP도 이번 EU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여러 주제 가운데 ‘브렉시트’ 관련 안건을 최우선의 이슈로 내세웠다. 난민 관리를 위한 국경 통제 강화 여부, 시리아 내전에 대한 주변국의 입장정리 등 긴급한 현안보다 이 문제가 유럽연합의 명운을 가르는 중요한 논의거리라는 평가다.

캐머런 총리는 앞서 영국이 EU에 남기 위해서 회원국들이 우선 합의해야 할 4개의 요구사항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요구를 회원국 정상들이 수용한다면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EU 회원국 잔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게 캐머런 총리의 ‘카드’이다. 캐머런 총리가 도널드 투스크 EU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밝힌 4개의 요구사항은 ▦영국과 같은 비 유로존 국가가 향후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된다는 점 보장 ▦EU의 보다 통합된 공동체를 지향하는 조치가 영국에 적용되지 않을 것을 구속력 있게 확인 ▦EU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라도 개별국 의회가 거부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 ▦EU 출신 영국 이주자에 대한 4년간의 복지혜택 또는 거주지원 제한 등이다.

이 조건 가운데 앞선 3개에 대해선 회원국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모양새이다. 영국을 EU에 묶어두는 대가로 이 정도는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마지막 요구사항에 대해선 폴란드 등 동유럽 회원국들이 시종일관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캐머런 정부가 복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회원국 이민자들에게 4년 동안 각종 복지혜택을 제한하겠다는 요구사항은 불공평한 처사라는 것이다.

영국 입장에서도 EU에서 빠져 나오는 게 마냥 좋지는 않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적처럼 정치적 변화가 영국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영 연방이 흔들릴 수도 있다. 존 메이어 전 영국 총리는 16일 BBC에 “브렉시트가 이뤄질 경우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캐머런 총리는 되도록 마지막 요구사항에 대한 양보를 얻어 브렉시트를 막아야 하는 입장이다.

18일로 종료되는 정상회담이 ‘브렉시트’ 안건의 합의를 마감해야 하는 데드라인은 아니다. EU는 이 안건을 내년 2월까지 종료하기로 선을 그어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회담이 브렉시트의 미래를 결정짓는 주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며 “사실상 영국을 제외한 27개 회원국이 영국의 요구사항들에 반대 의견을 밝힐 마지막 기회이다”고 보도했다.

한편 영 일간 텔레그래프는 최근 유권자 2만명을 대상으로 영국의 EU 탈퇴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이중 47%가 ‘찬성’을 원했으며 38%만이 ‘반대’의견을 냈다고 17일 보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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