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굳이 밝히지 않는 비밀 하나가 있다. 내가 오십이 넘도록 투표라고는 서너 번 밖에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한 번은 농협 조합장 선거였으니까 실제로 국가가 공휴일로 삼는 선거일에 투표장으로 간 적은 극히 드물었다고 하겠다. 물론 이십 대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낸 이유도 있지만 투표 행위를 기피했던 것은 분명하다.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 결격 사유라고 질타해도 고스란히 수긍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꼭 참여하고 싶은 선거도 있었지만 대개는 마음이 잘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면사무소나 시청 같은 공공 기관에 발길을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그냥 본능적으로 가기가 싫다. 그 탓에 증명을 뗀다거나 하는 일은 오롯이 아내 몫이다.
아주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회가 더 정의롭고 공평해야 된다고 믿으며 그런 의미에서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리고 살지 않는다. 그런데 국가 기관이 개입하는, 혹은 강제하는 일에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선거 역시 그런 의미에서 마음이 가지 않는 어떤 행위였다. 이것은 극히 주관적이고 어쩌면 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나는 아내나 아이들에게는 적극 투표를 권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 표를 행사했다. 처음으로 참여한 대선 투표였다. 너무도 터무니없는 구도라는 마음의 복받침이 가기 싫은 투표장으로 발길을 옮기게 했다. 상상조차 두려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말 그대로 두려움이 가득 했던 것이다. 내가 사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만 보아도 두려움은 충분히 근거가 있었다. 선거 당시 우리 마을 앞 대로변에는 농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한 붉은 플래카드 하나가 걸렸는데 ‘쌀값 22만원 보장’이라는 간단명료한 글귀가 박혀 있었다(누구는 대통령 공약이 21만원이었다고 하는데 우리 마을엔 분명 22만원이었다).
당시 17만, 18만원이던 쌀값을 20% 이상 더 쳐주겠다는 공약은 강력한 것이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쌀값은 시장이 아니라 정부에서 책정하는 것이므로 농민들은 환호했고, 이미 압도적으로 지지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공약 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이므로(당연히 내 믿음은 옳았다) 오로지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해 상대 후보에게 지지표를 던졌다. 일종의 안티 행위로서의 투표였는데 알다시피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쌀값은 14만, 15만원 정도다.

당시 괴로움에 빠져있던 서너 명의 친구들이 겨울바다를 보러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위로 겸 새로운 정부에 대해 하나의 기대를 이야기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른 분야는 기대할 게 없지만 남북문제에 대해서만은 잘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그리고 남북 간에 경제교류가 활성화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일종의 예견이었다. 지난 민주정부를 그토록 괴롭혔던 퍼주기 논란에서 자유로우며, 무엇보다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성과를 낼 분야는 단 하나 남북문제 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의 앞날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나는 진심으로 박근혜정부가 그렇게 하길 바랐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 어떤 과오도 덮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은 점점 흘러 내 이야기를 들었던 친구들이 나를 비웃을 무렵, 정부는 ‘통일대박론’을 들고 나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나 역시 기대가 피어났다. 비록 천박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잡았다는 기대였다. 그런데 다시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후 어떤 비전도, 노력도 하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을 보며, 나는 어쩔 수 없이 1972년 남북공동성명 이후에, 그것을 빌미로 선포되었던 유신의 망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괴롭고 우울한 날들이다.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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